▽호문 대역사건(虎門大逆事件)
오는 10월 1일에 공판 시작, 범인은 대의사 아들 탄파대조
작년 12월 27일 오전 10시 45분에 섭정궁(攝政宮) 전하께서 제국의회 개원식에 행차하시는 중, 호지문(虎之門) 부근에서 전하의 자동차를 향해 육혈포를 발사한 자가 있었다. 범인은 곧 체포되었고, 그 사건은 황실(皇室)에 대한 위해죄(危害罪)로, 형사소송법 제 310조 2항에 따라 대심원의 특별 권한에 속하는 사건이 되었다. 검사총장이 그 수사의 임무를 맡아 사건을 조사한 결과, 범인은 산구현(山口縣) 웅모군(熊毛郡) 주방촌(周防村) 출신이며 전직 대의사였던 탄파작지진(灘波作之進)의 넷째 아들인 대조(大助, 26세)로 밝혀졌다. 사건은 10월 1일에 공판에 부쳐졌다. 재판장은 횡전국신(橫田國臣) 씨이며, 배석판사는 풍도직통(豊島直通), 극행차랑(磯谷幸次郎), 송강의신(松岡義信), 서천일남(西川一男) 씨 등이다. 검사는 소산송길(小山松吉) 씨이고, 변호인은 화정탁장(花井卓藏), 암전주조(岩田宙造), 금촌력삼랑(今村力三郎) 씨 등이다.
또한, 황실에 대한 위해죄는 형법 제 73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이 법에 따르면 천황, 태황, 태후, 황태후, 황후, 황태자 또는 황태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가하려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번 사건은 대심원의 특별 권한에 속하는 만큼 1심에서 확정되며, 공소나 상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건 발생 전후의 상황
범인은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되었다. 12월 27일 오전 10시 40분, 섭정궁 전하께서 의회 개원식에 행차하시던 중 호지문 부근에서 전하가 탄 자동차를 향해 권총을 발사한 자가 있었다. 범인은 즉시 포박되었으며, 전하께서는 다행히 무사하셨다. 사건 당시 전하의 자동차가 지구금평정(芝區琴平町) 1번지에 도달했을 때, 호지문 공원과 교구신조(橋口新助) 씨의 집 사이 거리에서 연령이 25~26세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권총을 발사했다. 발사와 동시에 큰 소동이 일어났으며, 경찰들이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고 경시청으로 호송했다.
▽철야 수색
사건이 발생하자 검사국에서는 검사총장과 각 판검사가 출동했고, 경시청 전 부서가 총출동하여 현장을 조사했다. 현장에서 총을 압수하고 범인을 엄중하게 취조한 결과, 범인은 산구현 웅모군 주방촌 출신이며, 전직 대의사 탄파작지진(灘波作之進)의 넷째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날 밤, 경찰들은 추가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철야 수색을 진행했으나, 별다른 연루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예언(豫言)의 서신
이번 사건의 범인 탄파대조(灘波大助)는 사건 발생 전, 형 정태랑(正太郞)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사회를 전율하게 할 대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내용은 자기는 세상에서 버림받을 일서생이나 이번에 사랑에 지나는 힘으로 사회가 전율할 만한 대사건을 단행할 터이니 주목하여 달라고 하였는데 그 편지는 12월 27일 오후 2시에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으며, 범인은 이번 사건을 계획적으로 저질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범인의 가족
범인은 전직 대의사 탄파작지진(灘波作之進)의 다섯째 아들이며, 부모가 다 있고 고향에서는 다소 명망이 있는 집이었고 그의 형들은 모두 실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과거에 정치계에 몸담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의사직을 내려놓고 근신 중이다. 그 고향에서는 촌장까지 나서서 전촌이 근신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학력은 어떠한가
범인 탄파대조는 산구현 웅모군 주방촌 출신으로, 덕산(德山)중학교에서 4년급까지 마치고 산구(山口)에 있는 흥성(鴻城)중학교에 입학하여 2학기까지 다녔다. 이후 여러 번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진 뒤, 동경으로 올라와 조도(早稻田) 고등학원에 다니며, 중학교 시절부터 정치와 시사에 흥미를 가졌다. 그는 동경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메이데이 시위에도 선두에서 참가했다. 동경에는 작년 9월 1일 대지진이 일어나던 날 정오경 자기 고향으로부터 도착한 것이라는데 그는 애탕(愛宕)경찰서 령목(鈴木)경부보에게 체포되였다더라.
▽내각 총사직
범인이 잡힌 이후로 일본 상하는 모두 경동하여 당시 산본(山本) 내각은 책임을 지고 총사직을 하고 산리(山梨) 경비 사령관과 탕천(湯淺) 경시 총감은 즉시 후등(後藤) 내무 대신에게 사표를 제출하였으며 그때 백상(白上) 관방 주사(官房主事), 정력(正力) 경무부와 소활 경찰서까지 경시 총감에게 사표를 제출하였고 호등 내무 대신은 즉시 근신하는 뜻을 보였으나 적화 방지(赤化防止) 단원이 후등 내무 대신 집에 뛰어드는 등 대소동이 있었더라 (동경 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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