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현대미술가 수보드 굽타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서 개인전
‘프루스트 매핑’ 등 연작 선보여
“인도 델리의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어느 날, 요리를 하러 부엌에 갔을 때였어요. 스테인리스로 된 주방 도구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데, 마치 나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죠.”
인도의 저명한 현대 미술가인 수보드 굽타(사진)는 이때부터 철제 도시락, 우유 통, 팬부터 자전거까지 일상 속 사물로 예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인도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작업을 이어갔고 2000년대부터 해외 미술관과 컬렉터가 대형 설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주목받았다. 그의 최근작이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전시된다.
굽타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국내 개인전 ‘이너 가든’에서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 1층, 지상 1층과 3층에 걸쳐 회화 및 조각 15점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공간에 맞춰 작은 규모의 설치 작품과 벽에 걸 수 있는 회화 작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1층에서 볼 수 있는 연작 ‘프루스트 매핑’은 납작하게 만든 헌 그릇을 배경으로 다양한 색채의 용기들이 배치된 부조 형태의 작품. 이 연작에는 내부가 진한 검은색으로 깊은 심연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노란색 그릇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굽타는 “인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카비르가 그릇 속에 우주 만물이 들어 있다고 말한 시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헌 그릇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그 그릇을 사용했던 사람들, 그 사람과 얽힌 수많은 사람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카비르의 시는 지하 1층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이 질그릇 안에 일곱 개의 대양과 헤아릴 수 없는 별이 있다 I’으로도 이어진다. 작품 제목을 카비르의 시에서 차용한 이 작품은 그릇 하나를 반으로 쪼갠 뒤 입구가 서로 맞닿도록 위아래로 배치했다. 그냥 보면 종교적인 의식에 쓰이는 도구를 형상화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일상적 그릇이며 그 내부를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도록 녹(파티나)을 입혔다.
이 밖에 석고로 스투파(불사리를 보관하는 탑을 의미하는 인도 불교의 전통 건축물) 형태를 만들어 그릇을 집어넣은 설치 작품 ‘스투파’와 회화 작품 ‘이너 가든’ 연작 등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회화 작품은 말린 꽃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굽타는 “책장 사이에 꽃을 끼우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보존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꺼내 보면 꽃이 가졌던 좋은 분위기와 감각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의 시장에서 파는 평범한 사물들에서 영감을 얻는 굽타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남대문 시장도 가보았고 스릴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는 그는 비빔밥과 김치도 인도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고. “정관 스님이 출연한 요리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봤어요. 다음에 한국에 오면 전통 방식으로 김치를 담그는 시골에 가서 ‘진짜 김치’를 꼭 먹어 보고 싶습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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