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가 거적을 덮어쓴 채 마당에 있었다. 이 목재는 장차 어떤 가구가 될까. 어떤 무늬를 품고 있을까. 경기 용인시 공방에서 만난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小木匠) 전승교육사(62)는 말했다. “켜보지 않으면 나무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축적되는 안목으로 나뭇결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이 나무가 쓰일 적합한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창고에는 대패로 켠 목재 판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이 품은 나이를 합치면 억겁의 세월일 것이다.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 걸렸다”
공방에 들어서자 그가 만든 의걸이장의 위용이 대단했다. 참죽나무 틀에 끼워 맞춘 느티나무 문에서 나뭇결이 춤추고 있었다. 한국의 산과 계곡이 등고선 형태로 꿈틀대는 듯한 강렬한 춤사위였다. 내부 상단에 횟대를 가로질러 옷을 구김 없이 걸게 한 조선 시대 의걸이장을 그는 현대에 맞게 풀어냈다. 서양 가구들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세련된 감각이었다.
“한 폭의 그림이 나무에 앉은 것 같죠? 나무가 수십 년 돼도 이렇게 나이테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사들인 800년 넘은 고사목으로, 사람으로 치면 수양 끝에 진리를 터득하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노인이었어요. 전체의 10%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성한 부분을 살려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주름과 상처가 생기듯 나무도 무늬가 드라마틱해집니다. 이런 나무는 가구의 얼굴 격인 전면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얼굴 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이 걸렸네요.”
그는 1979년 17세 나이에 고 강대규 국가무형유산 소목장의 공방에 들어가 10년 동안 도제식으로 사사했다. 1989년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세운 뒤 1996년 국가무형유산 제55호 소목장 전승교육사로 지정됐다. 전수생, 이수자, 전승교육사를 거쳐 소목장이 된다. 국내에 소목장은 3명, 전승교육사는 그를 포함해 단 2명이다.
공방의 벽면에는 대패가 가득 걸려있었다. 1998년 강 소목장이 타계한 뒤로 스승의 맥을 잇도록 물려받은 대패들이다. “진정한 목수는 대패를 내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하지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대패에 있습니다. 목공을 하는 날은 명상하듯 몸풀기 대패질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는 2010년부터는 국가유산진흥원 평생교육원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 과정 등을 통해 1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2021년부터는 이수자 교육도 시작했다. 제자들과 함께 지금까지 6차례 전시를 열었던 그가 28일부터 10월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장인의 외길을 걸어오며 만든 30여 점을 선보이는 제1회 조화신 소목전 ‘소목장, 나무를 닮다’이다.
“손바닥으로 수백 번 쓸고 깎고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와 함께 숨 쉬면서 하나가 돼요. 그렇게 미치지 않으면 나무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개인전을 여는 걸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목재들이 가구가 됐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만난 우리 목가구
그가 만드는 책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쓰인다. 무겁고 단단하며 결이 아름다워 목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느티나무, 가볍고 잘 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휘거나 뒤틀리지 않아 가구의 뼈대로 쓰이는 참죽나무, 감나무가 부분적으로 검게 돼 그윽한 멋을 풍기는 먹감나무,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소나무….
“우리 조상들이 책갑을 사용한 이유는 귀한 책을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나무의 자연색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반해 책갑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런 가구에는 잡동사니를 아무렇게나 넣을 리 없다. 꼭 필요한 물건만 담고 살도록 삶의 태도가 단정해질 것이다. 목가구는 어떤 장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려해지기도 간결해지기도 한다. 금속 장석을 붙인 예쁘장한 함(函)에 귀한 것을 보관하고, 화장기 없는 듯 맑은 느낌의 서안에서 책을 읽는 삶. 그것이 ‘퍼펙트 데이’를 이루는 행복 아닐까.
그는 말한다. “처음에 쌈박하고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멋스러워지는 나무도 있습니다. 사람과 똑같아요. 세월의 묵은 색이 입혀지면 품위가 생겨나죠. 나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고 기다리는 게 장인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나이테가 뚜렷하고 단단한 물성인데도 매끄럽다고 한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넘어 제게 온 후 눈과 비를 맞으며 강한 성질을 죽여 좋은 목재로 숙성해 갑니다. 그런 목재로 만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지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목가구가 언젠가 한 번쯤은 상처받았을 당신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21세기 장인의 역할을 생각하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도 선보인다. “앞선 세대가 잘 만들어 놓은 ‘우리다운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죠. 요즘은 뭘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빨리빨리’ 사느라 애국(愛國)이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같이 큰일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고 강대규 소목장은 그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많이 만들어 보라. 내일 당장 그만두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만들어라.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연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그는 제자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대패가 깎일 정도로 대패 날을 갈아서 많은 연습을 해라. 대패, 끌, 톱질은 목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제자들은 ‘스승 조화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현대에서 전통 가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십니다. 대물림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목재부터 깊게 이해하라고 하시죠. 본질과 깊이, 두 단어가 제자들의 작업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장인의 존재 가치를 깨우쳐주십니다.”
스마트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문화는 계속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우리 목가구를 향유하는 문화가 삶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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