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꿈꾸는 세상은 각기 다르다. 그러기에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다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한다.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믿고 이를 향해 간 이들을 조명한 뮤지컬과 전시가 열리고 있다.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꿈꾸는 세상을 향한 세 남자의 질주
조선 20대왕 경종. 왕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인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기면증을 앓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왕권은 더 흔들린다. 왕위를 노리는 이복동생 연잉군(훗날 영조)은 경종을 압박해 온다. 사관 홍수찬은 이들 두 형제의 역사를 묵묵히 기록한다.
2019년, 2021년에 이어 세 번째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이다. 조선 군주 중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경종을 비추며 왕의 역할과 형으로서의 입장이 충돌하며 터져 나오는 파열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되지 못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운명에 맞서 몸부림치는 연잉군의 내면도 설득력 있게 그렸다. 마음 한 곳 붙인 데 없는 경종이 기대려 하지만 그 때마다 거리를 두는 홍수찬의 알 수 없는 속내도 궁금증을 더한다.
3인극으로, 배우들은 각자 처한 복잡한 입장을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낸다. 팽팽하게 당겨지면서도 무대를 안정감 있게 채우는 삼각형을 떠올리게 한다. 경종 역은 주민진 박규원 유승현이 맡았다. 연잉군은 김지온 박준휘 홍기범이 연기한다. 홍수찬 역에는 강찬 유태율 이진혁이 발탁됐다.
주민진은 유약해 보이지만 힘이 없으면 포용하는 정치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왕권을 흔드는 노론 세력을 하나하나 누르며 강단 있게 나아가는 경종을 몰입도 있게 연기한다. 강력한 군주였던 아버지 숙종, 아버지에게 사사된 생모(장희빈)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홍기범은 자신만만한 듯하지만 낮은 신분 출신인 생모(숙빈 최씨) 때문에 움츠러드는 연잉군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다. 유태율은 속마음을 꾹꾹 누르다 예상치 못한 행보에 나서는 홍수찬을 매끄럽게 그렸다.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정치 상황이 급물살을 타며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가운데 세 인물의 복잡한 속내를 입체적으로 비춘다. 충돌을 거듭하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 경종과 연잉군이 비로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다.
극의 흐름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넘버들도 작품에 힘을 더한다. 경종이 “나를 꿈꾸게 하라”며 반복해 부르는 대목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돈다.
11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 1관.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현실을 비트는 기발한 상상력
“뱅크시 당했다(Banksy-ed).”
2019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가 104만 2000파운드(약 17억 원)에 낙찰된 후 그림이 액자 아래로 저절로 내려가며 파쇄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나온 말이다. 뱅크시가 미리 액자에 장치를 설치해 벌인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화가’인 뱅크시는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과 퍼포먼스 영상 등 130여 점으로 구성됐다. 국내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꽃 던지는 소년’(2003년), ‘몽키 퀸’(2003년), ‘네이팜’(2003년), ‘행복한 헬리콥터’(2003년), ‘펄프 픽션’(2004년) 등 유명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풍선을 든 소녀’는 소더비 경매장에서 파쇄된 작품이 아닌 다른 에디션이 전시돼 있다.
뱅크시는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기에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을 통해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선 페스트 컨트롤의 공식 인증을 받은 뱅크시 작품 29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인포그래픽을 통해 1990년대 영국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해 세계 곳곳의 거리, 건물 외벽 등에 그래피티를 남긴 뱅크시의 활동을 정리했다. 불법이며 저급하다고 인식된 그래피티를 대중적이며 의미 있는 예술로 끌어올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지하 4층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오며 감상하면 된다. ‘몽키 퀸’은 영국 여왕을 원숭이로 풍자한 작품이다. 태어나면서 왕족, 귀족 등 신분이 정해지는 구조를 비꼬았다. ‘행복한 헬리콥터’는 인명 살상용으로 동원된 헬리콥터에 귀여운 분홍색 리본을 달아 전쟁을 비판한다. 뱅크시의 작품에는 쥐가 많이 등장한다. 쥐는 노숙자, 부랑자, 이민자 등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외면 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폭력, 전쟁, 제도적 억압, 자본주의의 폐해에 반대하는 뱅크시는 현실을 기발하게 비튼 작품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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