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채가 긴 사람이 두 손으로 따비를 잡고 힘차게 밭을 갈고 있다. 그 왼쪽에는 수확한 곡물을 토기에 담는 이가 보인다.
6일 충북 증평군 증평민속체험박물관에서 개막한 ‘시대를 담다, 농경문 청동기’ 전시에서 선보인 보물 ‘농경문 청동기’의 독특한 무늬다. 기원전 3, 4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례용 도구로 여겨진다. 구리에 주석을 섞은 청동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주조 기술이 필요하기에 청동 의기는 당대 지배계급이 전유한 물건이었다. 박유진 증평민속체험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초기 철기시대의 풍부하고 생생한 한반도 농경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전시에선 농경문 청동기 외에 국보 ‘청동방울’과 ‘방패형 동기’도 소개됐다.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국박)과 지역 공립 박물관·미술관이 협업한 ‘국보 순회전’의 일환이다. 서울 국박에 편중된 국보, 보물을 지역으로 순환 전시해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공립 박물관을 살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국보, 보물 22점, 29점을 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6곳에 3∼7점씩 나눠서 보낸다. 해당 유물들은 신라 금관, 기마인물형토기, 청자, 백자, 농경문 청동기 등 교과서에 나오는 중요 문화유산이다. 올 6∼9월 충남 보령군, 전남 강진군 등에 이어 9∼12월 증평군, 강원 양구군 등 6곳에서 진행된다.
국보, 보물의 관람객 유인 효과는 큰 편이다. 실제로 농경문 청동기가 전시된 6∼19일 증평민속체험박물관 방문객 수는 237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62명)에 비해 147% 늘었다. 앞서 6월 5일∼7월 21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방울을 선보인 경남 합천박물관도 방문객 수가 이전보다 162% 증가했다.
증평민속체험박물관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국보, 보물을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동네에서 볼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표했다. 인근 형석고에 재학 중인 장민선 군(16)은 “교과서에 나오는 귀중한 유물들을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윤선식 형석고 역사 교사(34)도 “보통 국보나 보물은 서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만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학생들이 손쉽게 생생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유진 학예연구사는 “추석 기간 중 가족 방문이 이어졌고, 인근 학교들의 단체 관람 스케줄도 꽉 찬 상태”라고 전했다.
주요 국보, 보물이 서울 국박에 소장돼 있는 것은 전시 환경 등을 감안한 조치다. 지방 공립 박물관은 국박에 비해 항온 항습 기능 등이 갖춰진 수장고나 전시 공간이 부족한 데다 유물 보험 비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황은순 국박 학예연구관은 “전시 환경에 덜 민감한 금속과 토기 등을 이번 순회전에 우선 선정하고, 보안이나 운반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순회전에선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유물을 연계한 전시도 마련돼 눈길을 끈다. 전북 장수역사전시관은 13일 개막한 ‘금관총 금관, 그리고 이사지왕’ 전시에서 신라 금관총 출토 금관 등과 더불어 올여름 춘송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신라 토기 22점과 고대 악기 ‘훈’을 선보이고 있다. 이진성 장수역사전시관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장수군에서는 주로 가야 고분이 확인됐지만 최근 신라 고분도 새로 발견됐다”며 “장수군이 갖는 신라의 역사성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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