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기술이나 값비싼 장비 없는 손맛이 이겼다. 내로라하는 요리사 100명을 추려 그중에서도 1등을 꼽는 넷플릭스 요리 대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요리는 다름 아닌 급식이다.
15년간 경남 양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먹인 ‘급식 대가’ 이미영 씨가 그 주인공. 도마와 칼 한 자루가 그녀의 전부다. 그런데 그녀가 내놓은 식판 앞에 선 미쉐린 3스타 셰프(심사위원 안성재)는 4교시 종이 ‘땡’ 치면 급식실로 부리나케 내달리던 초등학생처럼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바쁘다. 그러곤 감탄에 가까운 심사평을 내놓는다. “초딩 입맛이다. 근데 와, 맛있다. 계속 먹게 된다.”
사실 그녀의 식판에 특별한 요리는 없다. 흰 쌀밥과 육개장, 수육, 상추 등이 고루 담겼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을 고려해 수육 양념으로 새우젓 대신 매실청 소스를 곁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작은 배려가 아이들을 먹이고, 살찌운다. 제 이름을 내건 식당을 운영하는 쟁쟁한 셰프들 사이에서 심사위원들이 이토록 평범한 급식에 ‘통(通)’을 외친 건 본래 요리란 한 사람을 먹이고 살찌우는 일임을 알아서가 아닐까. 내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어른이 되기 전, 우리를 키운 건 비범한 미식이 아니라 평범한 반찬들이었다.
‘흑백요리사’를 보며 이토록 평범한 밥상을 매일 차려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 황태연 씨다. 할머니는 환갑이 넘은 65세 때부터 갓 태어난 나를 돌봤다. 맞벌이하는 막내아들 부부가 안타까워 한집에 살며 거둬 먹이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14년 뒤 며느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며 영락없이 부엌일을 도맡게 됐다.
65년 살며 할 줄 아는 요리는 나물이나 찌개, 찜, 국 등 어른을 위한 요리밖에 몰랐던 할머니는 늘그막에 떠맡은 두 손녀를 살찌우려 돈가스, 토스트, 서양 국수(스파게티) 등 요즘 요리를 배워야 했다. 그중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어 설탕을 솔솔 뿌린 햄 치즈 토스트는 지금도 종종 생각날 정도로 별미였다. 매일 평범한 한 끼를 짓고 차려내느라 할머니의 손끝이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제법 우람해졌다. 유전적 한계로 160㎝를 넘기진 못했지만, 엄마보다는 조금 더 큰 키도 갖게 됐다.
할머니가 나를 위해 해준 음식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평생 잊지 못할 것은 푹 끓인 홍삼 물이다. 3년 전 5월 6일 갑작스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출장 갔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홍삼 달인 물이 주전자째로 베란다에 놓여 있었다.
주전자 표면에 손을 대보니 아직 열이 식지 않아 따뜻했다. 요리라 부를 수도 없는 그 평범한 물을 먹이겠다고 우리 할머니 세상 떠나기 직전까지 참 바빴겠다 싶었다. 평소라면 사계절 내내 끓여놓아 질려버렸을 그 물이 그날은 왜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던지. 혹시나 장례 치르고 집에 돌아오면 다 쉬어버릴까 봐 온 가족이 달라붙어 주전자 속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셨다.
그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분명 그날 마신 홍삼 성분 대부분은 흘러가 버렸겠지만, 내 몸 어딘가에 아직 그 효험이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더웠다는 올여름 더위를 먹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술을 진탕 마신 다음날에도 쌩쌩한 것도 그 덕인 것만 같다.
누군가를 살찌우려 매일 분주히 움직인 손은 이렇게나 힘이 세다. 흑백요리사의 ‘급식 대가’도, 나의 할머니도. 당신이 기억하는 그 누군가도.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