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예술작품으로 법 지식 늘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28일 01시 40분


◇미술관에 간 법학자/김현진 지음/424쪽·2만2000원·어바웃어북

친분이 있던 법조계 원로가 “법조계의 진짜 문제는 ‘관선변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검찰, 법원 내에서 사건 당사자를 위해 뛰어주는 상사나 선배를 부르는 은어인데, 우연히 들른 것처럼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 판사(또는 검사), ○○ 사건 맡았다면서? 원고가 억울한 것 같은데 기록 좀 잘 봐줘요” 하고 무심한 듯 간다는 것이다. 선후배 사이라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 내에서 살기가 힘들어지니 드러나진 않는데 검찰, 법원을 막론하고 고질적으로 만연된 현상이라는 것. 이것이 결국 수사·재판의 왜곡으로 이어지는데, 상식적으로 ‘왜 저렇게 이상한 판결(또는 수사)이 나오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관선변호’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법조계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로스쿨 교수이자 변호사인 저자는 16세기 화가 아르침볼도(1527∼1593)의 ‘The Jurist’(법학자 또는 법률 문제 전문가)를 소개한다. 법률가의 얼굴을 코와 미간은 머리를 제거한 개구리 몸통으로, 볼은 닭의 넓적다리, 눈썹은 닭 날개, 턱은 생선 꼬리, 입은 생선 대가리로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에도 표리부동, 견강부회, 아전인수, 곡학아세했던 괴기스러운 법률가들이 만연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레니(1575∼1642)의 ‘와인을 마시는 바쿠스’를 통해 ‘주취 감형’의 모순과 취중진담이 무효인 이유, 미성년자의 음주를 금지하는 법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또 푸생(1594∼1665)의 ‘솔로몬의 재판’을 통해 대리모와 익명 출산의 법적 근거를, 휘슬러(1834∼1903)의 ‘검은색과 황금색의 야상곡―떨어지는 로켓’을 통해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때를 설명한다. 딱딱한 법 이야기를 그림으로 쉽게 풀다 보니 읽는 맛이 있다. ‘화가의 날선 붓으로 그린 판결문’이란 부제는 좀 과한 듯. 그림을 통해 관련된 법과 사회문제를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라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미술관에 간 법학자#김현진#그림#법#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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