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무기로 세계 경제에 영향
美 재무부 작동 원리 집중 분석
정책 결정권자 뒷이야기 담아
◇달러 전쟁/살레하 모신 지음·서정아 옮김/360쪽·2만1000원·위즈덤하우스
“미국의 기준금리를 4.75∼5.0%로 0.5%포인트 인하하겠습니다.”
18일(현지 시간) 세계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입을 주목했다. 그의 금리 인하 발표와 동시에 ‘연준이 경기 침체를 우려했다’ ‘고용 지표가 악화됐다’ ‘상당수 국가도 금리 인하에 동참할 것이다’라는 온갖 해석이 뒤따랐다. 여러 경제지표도 꿈틀댔다. 파월 의장의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요동친 것은 독보적 지위의 기축통화인 ‘킹달러’의 위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연준이 발표하는 통화정책은 금리를 매개로 우리 가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는 무기가 된 지 오래다.
미국 블룸버그통신 기자인 저자가 쓴 신간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세계 질서를 만들며 달러 가치를 수호해 왔는지를 파헤친다. 원제는 달러화를 빗댄 ‘종이 군인들(Paper Soldiers)’. 2016년부터 미 재무부를 취재한 저자는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재무장관 3명(제이컵 루, 스티븐 므누신, 재닛 옐런)을 책에서 다룬다.
이와 함께 100여 명의 전현직 재무부, 연준, 백악관, 세계은행, 외교부 관료들과 나눈 대화와 관찰기도 담았다. 수치와 경제 원리가 난무하는 경제서가 아닌, 달러 정책 결정권자들의 생각과 말, 행동을 엿볼 수 있는 뒷이야기에 가까워 흥미롭게 읽힌다.
달러가 미국 경제의 무기가 되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연준의 행보뿐만 아니라 미 재무부의 작동 원리를 살펴봐야 한다. 달러의 독보적인 지위 뒤에는 달러의 설계자이자 수호자인 미 재무부가 있어서다. 많은 이들이 연준만 주목해 이를 종종 간과한다.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경제제재에 나선 사례로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도록 설득하려는 전방위적 외교 압력이 실패하자, 미 행정부는 수천억 달러의 국방비가 드는 군대 파견 대신 값싸고 효과적인 경제제재를 택했다는 것. 미국의 제재 후 러시아의 많은 기업과 정치인들의 달러화 접근이 즉각 차단되면서 루블화는 한 달 만에 30%가량 폭락했다.
책에선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의 민낯도 그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반 미국 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 보좌진에게 금리 인하 카드를 자주 언급했다. 2018년 므누신 장관이 공개적으로 “달러 약세가 미국에 좋다”고 밝혀 외환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건 트럼프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다.
복잡한 환율, 경제정책 얘기를 생생한 취재와 국제 이슈를 곁들여 비교적 쉽게 풀어낸 편이다. 해외 주식에 투자한 ‘서학 개미’나 국제 정세에 관심 있는 이라면 달러의 작동 원리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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