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암 이긴 ‘명 세터’ 최태웅…“새 꿈은 韓 배구 올림픽 진출” [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30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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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 SBS스포츠 배구 해설위원이 집에서 홈트레이닝 기구로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때 세 자릿수 몸무게까지 갔던 최 위원은 현재 한결 날씬해진 몸으로 해설을 하고 있다. 최태웅 위원 제공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48)은 화려한 배구 인생을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구공을 접한 후 지난해까지 약 40년간 항상 코트의 중심에 있었다. 선수 때는 ‘명 세터’로 활약했고, 지도자가 된 이후엔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명 감독’으로 불렸다.

실업 시절 그가 몸담았던 삼성화재는 슈퍼리그 9연패와 함께 77연승이란 전무후무한 실적을 올렸다. 프로배구 출범 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0년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현대캐피탈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엔 코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는 9시즌 동안 팀을 지휘하면서 두 차례나 팀을 V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말 현대캐피탈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요즘 40대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감독을 그만둔 후 그는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두 가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코딩을 배우는 것과 영어 공부다. 최 전 감독은 “예전부터 데이터에 관심이 많았다. 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내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만 따로 뽑아내는 걸 해보고 싶었다. 다섯 달째 배우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시절의 최태웅 전 감독이 세트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삼성화재 시절의 최태웅 전 감독이 세트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영어 공부 역시 새로운 도전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경기 분당에 있는 성인 영어반에 가서 회화 수업을 듣는다. 그는 “새 시즌에는 외국인 감독들이 지휘하는 팀들이 많다. 안 그래도 영어는 꼭 필요하다 싶었는데 좋은 계기라 생각하고 배우게 됐다”며 “남중-남고를 나와 프로에 와서도 남자팀에만 있어서 여자분들과 함께 수업하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며 웃었다.

7월에는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최한 레벨1 지도자 연수에도 참가했다. 열심히 한 덕에 ‘베스트 코치상’도 받았다. 그는 “모처럼 받은 상이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작년까지는 배구장을 중심으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생활했다면 요즘은 모든 일정을 스스로 짜면서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며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현대캐피탈을 이끌었던 최태웅 전 감독은 이달 통영에서 열린 KOVO컵에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최태웅 위원 제공
작년까지 현대캐피탈을 이끌었던 최태웅 전 감독은 이달 통영에서 열린 KOVO컵에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최태웅 위원 제공

요즘 그에게 가장 큰 도전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체중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말 성적 부진으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예전부터 먹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곤 했다. 한창 선수 생활을 할 때 80kg 안팎이던 몸무게가 세 자릿수를 향해 갔다. 감독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는 체중이 더 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술자리도 늘었다. 100kg의 벽도 가볍게 넘어 버렸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선수 시절 발목 수술만 5차례를 하면서 뛰는 건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체중 조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해설위원 제안을 받은 뒤였다. SBS스포츠에서 배구에 대한 경험과 식견이 남다른 그에게 해설위원직을 제안해왔다. 그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 처음에 고사했다. 그런데 해설 역시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되든 안 되든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TV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선 먼저 체중을 줄여야 했다. 해설위원을 말하는 직업인 동시에 보여지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 자릿수 몸무게를 90kg까지 줄이기도 결심한 후 홈트레이닝을 위한 운동 기구를 구매했다.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로우잉 기계 등으로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도 조절하면서 불과 일주일 만에 5kg 이상을 뺐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그는 지난주 경남 통영에서 열린 2024 통영-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KOVO컵)에서 해설위원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100kg이었을 때 샀던 양복바지가 이제 잘 맞지 않는다”며 “정규리그가 시작되기 전까지 더 탄탄한 몸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생일을 맞는 최태웅 전 감독과 제자들인 현대캐피탈 선수들. 최태웅 위원 제공

코트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본 배구는 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배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계를 하면서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며 “또 코트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한 대회를 치르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해설위원으로 그는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8월에는 각 팀을 돌며 연습경기를 관찰했고, 중고교 팀들의 경기를 보면서 유망주들도 유심히 보고 있다. 그는 “배구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새 외국인 감독이 맡은 팀도 예전 우리가 했던 것 똑같이 하기도 한다”며 “올 시즌은 각 팀마다 범실을 줄이는 배구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남자 배구를 대표하는 두 명의 지도자에게 배구를 배웠다.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현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과 김호철 전 현대캐피탈 감독(현 IBK기업은행 감독)이다.

실업 배구 시절 신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는 말 그대로 적수가 없었다. 최 전 감독을 비롯해 김세진 신진식 여오현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최 전 감독은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 삼성화재의 훈련량은 다른 팀 선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길수록, 우승을 하면 할수록 해마다 훈련 강도가 세졌다”며 “기술 훈련 뿐 아니라 그 바탕이 된 체력 훈련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이 2018~2019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헹가레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DB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이 2018~2019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헹가레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DB


2018~2019시즌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이끈 최태웅 전 감독과 여오현(현 IBK기업은행 코치). 동아일보 DB
2018~2019시즌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이끈 최태웅 전 감독과 여오현(현 IBK기업은행 코치). 동아일보 DB

영원한 삼성맨일 것 같았던 최 전 감독은 2010년 FA로 삼성화재로 이적한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갑자기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그는 레전드 세터였던 김호철 감독을 만났다.

새 팀에서 그는 불의의 림프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의 목표는 “한 번 만 더 코트에 서는 것”이었다. 그때 큰 도움을 준 것이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최태웅 감독의 몸 상태에 맞게 적절히 훈련을 시켰다. 최 감독은 너무 과하지도, 또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훈련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는 “몸이 아프다는 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훈련에 참가시켜 주셨다. 덕분에 운동을 할 때만큼은 아픈 걸 잊은 채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전 감독은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정확히 6개월 후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었다. 비록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감독이 된 후 두 차례나 팀 우승을 이끌었다.

최태웅 전 감독이 가족들과 함께 골프 라운드를 하는 도중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내 조재영 씨, 큰 아들 윤서, 막내 아들 현서 씨의 모습. 최태웅 위원 제공

감독이 된 후 그는 한국 배구판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코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독이 된 그에게 경험 부족이라는 선입견이 따라 붙었지만 그는 ‘스피드 배구’를 비롯한 각종 새로운 시도로 취임 첫해부터 우승을 차지했다.

수비 전문 포지션 리베로 자리에 굳이 두 명을 써서 세트를 올리게 한다거나, ‘원 포인트 서브 전문 선수’를 따로 키워 세트마다 마무리 투수처럼 기용했다. 코트 안의 4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공격을 향해 출발하는 배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코치 경험이 없었기에 다소 무모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명 세터’로 활약했던 최태웅 SBS해설위원이 세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그에게 요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한국 남자 배구가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나간 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다. 김세진, 신진식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출전한 올림픽에서 한국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다만 그 대회에서 미국을 잡은 게 큰 수확이었다. 최 전 감독은 “당시 우리에게 졌던 미국은 그 멤버 그대로 4년 후 아테네 올림픽에서 4위를 했고,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선 금메달을 따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와 신장이 비슷한 일본은 세계 10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올림픽 무대에 서고 있다”며 “일본 선수들은 신장을 작지만 빠른 스피드와 탄력을 갖고 있다. 신체조건이 비슷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유소년부터 성인팀에 이르끼까지 일관된 선수 육성을 위해 힘을 쓸 생각이다. 그는 “선수층이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초중고에서 유소년, 성인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배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어떻게든 팬 여러분께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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