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전,란’ 개막작 선정, 첫 초청 3년만… 메인시간대도 차지
자본력-대중성 업고 존재감 키워
BIFF 인사 잡음-보조금 삭감 탓도
“자체 행사 질 높여야” 지적 나와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상징으로 불리는 ‘영화의 전당 중극장’, 해운대 영화의 거리에 우뚝 서 있는 5성급 호텔 ‘파크하얏트부산’….
2∼11일 열리는 BIFF에서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빨간색 알파벳 ‘N’ 표식이 새겨질 곳들이다. 그동안 넷플릭스가 BIFF에서 영향력을 키워 왔지만, 올해만큼 두드러지게 눈에 띈 적은 없었다. 영화계에선 “넷플릭스가 BIFF의 손님을 넘어 주인 자리를 꿰찰 기세”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2일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공개되는 개막작이 넷플릭스 영화 ‘전,란’으로 선정된 것. 박찬욱 감독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넷플릭스 작품이 처음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BIFF에서 주목받는 시리즈를 미리 선보이는 ‘온 스크린’ 부문에 ‘지옥 시즌2’(한국), ‘이별, 그 뒤에도’(일본),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것’(대만)이 선정되기도 했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물 중 처음으로 넷플릭스 ‘지옥’이 BIFF에 초청된 2021년 이후 고작 3년 만에 개막작까지 진출했다”며 “3대 영화제인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2022년 넷플릭스 작품을 개막작으로 상영한 적이 있지만 BIFF의 변화는 빠른 편”이라고 했다.
BIFF의 가장 뜨거운 시기인 첫째 주 금요일 밤을 차지한 것도 넷플릭스다. 4일 오후 6시 해운대 영화의 거리에 있는 파크하얏트부산에서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5 한국 영화’가 열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전까진 자료를 통해 기대작을 배포해 왔지만 이번엔 BIFF 시기에 맞춰 내년 공개되는 영화 ‘계시록’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를 부산에 마련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3∼6일엔 영화의전당 맞은편 KNN타워 1층에 있는 대형 카페를 통째로 빌리기도 했다. BIFF 방문객이 기념사진 등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랑방’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넷플릭스의 행보가 눈에 띄는 건 BIFF 자체의 무게감이 떨어진 탓도 있다. 올해 BIFF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일본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 일본 거장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등이 내한한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홍콩 배우 저우룬파 등 지난해에 비해 대중성은 낮은 편이다. 정부 국고보조금이 지난해 12억 원에서 6억 원으로 줄어든 상황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BIFF가 넷플릭스에 개방적인 건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지난해 BIFF 개막작인 ‘한국이 싫어서’는 1년 가까이 지난 올 8월 개봉했지만 관객을 6만 명 동원하는 데 그쳤다. BIFF는 지난해 인사 잡음으로 인한 지도부 공백과 전 집행위원장을 둘러싼 성추행 논란으로 전례 없는 혼란을 겪으며 명예 실추도 겪었다.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달 3일 기자간담회에서 “넷플릭스 영화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작품 자체를 보고 결정했다. 역대 개막작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넷플릭스가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 BIFF를 자신들의 축제로 만들고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반면 BIFF의 변화가 시대 흐름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영화관뿐 아니라 영화제도 OTT라는 새로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BIFF도 자체 행사의 질을 높이며 스스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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