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수년 전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끼는 와인이 있었다. 수많은 파티와 축제에 단골로 쓰이는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을 의미한다. 원래 ‘샴페인 와인’으로 불렸지만, 이 지역이 워낙 와인으로 유명해지자 줄여서 샴페인이라고 부르게 됐다.
축하의 상징 샴페인
좋은 일이 생길 때면 뒤따르는 말이 있다. 바로 “샴페인 축포를 터뜨리자”다. 역사적으로 샴페인은 축하를 상징했다. 샹파뉴는 프랑스 왕이 대대로 대관식을 열던 곳이다. 프랑크 왕국(현 프랑스)의 왕 클로비스 1세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이 자리에 세계문화유산인 랭스 대성당이 세워지기도 했다. 샹파뉴는 프랑스 왕국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자, 축배의 지역이었다. 자연스럽게 축하할 일이 생길 때도 상파뉴 와인이 사용됐다. 나폴레옹의 기마 병단 역시 전쟁을 앞둘 때면 샴페인 병 입구를 깨뜨려 사기를 진작했다. 여기에는 축포를 통해 승리를 기원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샴페인은 주로 피노누아(Pinot Noir·피노누아르)라는 고급 적포도 품종과 샤르도네(Chardonnay)라는 청포도 품종을 사용해 만든다. ‘검은 솔방울’이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피노누아는 검붉은 빛을 품고 있다. 이처럼 적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라고 부르며, 반대로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이라고 한다. 적포도로 금빛 와인을 만들려면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다. 가볍게 압착해 과즙만 뽑아내면서도 껍질색이 배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섬세한 작업은 샴페인을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샴페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프랑스의 ‘돔 페리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돔 페리뇽은 피에르 페리뇽이라는 수도사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1668년 샹파뉴 지역의 베네딕도회 오빌레 수도원에 들어가 일생을 샴페인 개발에 몰두했다. 피에르 페리뇽은 병 내 2차 발효를 통해 탄산을 용해하는 방법을 알아내 현대적 샴페인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그에게는 ‘성스럽다’는 의미의 도미누스(Dominus)를 넣어 돔 페리뇽이라는 호칭이 붙었고, 훗날 이는 고급 샴페인의 명칭으로 사용됐다. 주의할 점은 그가 샴페인을 최초로 발명했다는 정확한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에르 페리뇽이 수도사로 일하기 5년 전인 1663년 이미 영국에서 발포성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피에르 페리뇽의 기법이 샴페인을 더욱 고급스럽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는 적포도에서 맑은 과즙을 얻는 방법과 산지가 다른 포도를 섞어 브랜딩하는 오늘날의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포도나무를 정기적으로 잘라 수확량을 조절하고, 이른 아침에 포도를 수확하며, 상한 포도는 과감히 버리는 등 여러 ‘방법론’을 개발했다.
탄산감이 주는 매력
기록에 따르면 샴페인은 본래 레드 와인이었다. 다만 북위 50도에 이르는 추운 지방인 샹파뉴는 부르고뉴나 보르도 지역에 비해 기후 조건이 너무 나빴다. 레드 와인으로는 두 지역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샹파뉴의 와인 제조자들은 다른 방식의 와인을 생각해냈다.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적포도를 살짝 착즙해 핑크빛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 형태로, 오늘날 로제 와인과 유사하다. 프랑스어로 ‘뱅 그리(Vin Gris)’라고 부르는 이 와인은 영국에서 크게 성공했다. 특히 탄산감이 흥행에 일조했다. 프랑스에서 원액을 받아다가 유리병에 담은 후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탄산이 나오게 된 덕분이다. 추운 샹파뉴에서 오크통째로 와인을 받다 보니, 발효가 끝나기 전 효모가 동면해 생긴 일이었다. 영국에 도착한 와인은 유리병으로 옮겨졌고, 이 상태로 봄을 맞으면서 효모가 다시 깨어났다. 효모는 남은 당분을 먹으며 알코올을 만들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탄산이 발생했다. 이 탄산이 와인 속에 용해되면서 샴페인이 탄생한 것이다. 영국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은 1662년 왕립학회에 스파클링 와인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샴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영국에서는 발포성 와인에 대한 사안이 계속 다뤄졌다. 영국에서 샴페인이 시작됐다고 알려진 이유다. “프랑스가 영국보다 발포성 샴페인의 등장이 늦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또 있다. 1728년까지 프랑스에서는 와인의 유리병입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오크통에 들어간 와인에만 세금을 적용하다 보니 유리병 와인이 금지됐고, 궁정에서나 마실 수 있었다. 샴페인 기업들을 보면 1730년 이후에 생긴 곳이 많은데, 관련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 샴페인에 대한 프랑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런데 프랑스 샹파뉴 지역 외에도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스위스 뇌샤텔주 샹파뉴 지역이다. 이곳 역시 1974년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샹파뉴라는 라벨 사용을 허락받았다. 예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스위스 샹파뉴 지역 와인은 탄산이 없는 일반 와인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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