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비화-개인 회고 더해
대하소설처럼 술술 읽혀
◇원자 폭탄 만들기 1,2/리처드 로즈 지음·문신행 옮김/956쪽·4만4000원(1, 2권)·사이언스북스
리처드 로즈의 ‘원자 폭탄 만들기’는 과학 교양서의 걸작으로 평가받아 온 책이다. 논픽션 분야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이만한 책은 드물다고 할 정도로 평가가 좋다. 제목 그대로 원자 폭탄을 처음 개발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는 책인데, 그렇다고 원자 폭탄의 원리만 설명하는 책은 아니며 다양한 전쟁, 정치, 외교 이야기를 같이 다룬다.
보기에 따라서는 과학 교양서가 아니라 정치외교 비화를 설명한 책처럼 읽을 수도 있다. 원자 폭탄이 처음 개발된 1940년대는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이니 역사 교양서로 소개되는 일도 많다. 핵무기는 현대의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을 위한 전략과 전술은 어때야 하는지를 뿌리부터 바꿔 놓은 발명품인 만큼, 이런 내용이 곁들여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전체 중심 줄기는 과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원자 폭탄 같은 무기가 가능할 거라는 발상을 떠올리는 헝가리 과학자들의 사연을 풀어 놓는 것으로 시작해서, 과학자들의 발견과 노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원자 폭탄이라는 무기가 점차 구체화되고 실제로 개발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게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떤 과학자는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떤 성격이었기에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사회에서 살았기에 그런 연구를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를 같이 이야기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등장인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대하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면서도 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다루고 있기에 대하소설 이상의 묵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오펜하이머라는 과학자의 삶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아닌 원자 폭탄을 주인공으로 한 이 책, ‘원자 폭탄 만들기’가 영화로 나오면 훨씬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주인공이 원자 폭탄이기에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더 많이 다룰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솜씨도 뛰어나다. 결말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리는 대목에서 작가는 폭격기 조종사의 사연을 따라가며 미군이 어떤 식으로 원자 폭탄 투하 작전을 수행했는지 긴박하게 설명한다.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야기 다음 장면에서는 히로시마 시내에서 일상을 살고 있던 한 일본 시민의 회고담을 꺼낸다. 이런 구성 덕에 세월이 흐른 뒤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연결하며 깊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책의 장점이 살고,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만한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다.
과학 이야기를 포함해 오래 고민해 볼 만한 깊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가지로 많이 담고 있는 책이다. 퓰리처상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까지, 빛나는 수상 실적도 많은 책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든 쉽게 읽을 만한 책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책은 과연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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