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오랜만에 대학 동기 A를 만났다. 둘이 식사한 적은 별로 없는 친구였다. 약속에 조금 늦은 내게 A는 진지한 표정을 하곤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넌 먹는 데 진심이야?”
당황스러운 질문. 네가 뭘 제대로 먹기는 해? 시원찮은 반응에도 친구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입이 짧은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자기는 먹는 데 진심이라 어느 하나 허투루 주문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에 A는 자못 신중한 자세로 하나, 둘, 셋 다 먹지도 못할 음식 목록을 읊었다.
처음 나온 메뉴는 미나리 돼지고기볶음이었다. 약간 짠가 싶었지만, 막걸릿잔을 비우며 별생각 없이 먹고 있었다. 이번에는 맛이 어떠냐는 질문. 술과 잘 어울리니 괜찮다고 답했다. 어느새 젓가락을 내려놓은 A는 다시금 무게를 잡더니 말했다. “내가 볼 때 넌, 먹는 데 진심은 아니야.”
사실은 몇 달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여름 끝자락, 야근을 앞둔 저녁의 한적한 평양냉면 식당. 회사 선배가 추천하는 평냉 맛집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나도 그 맛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디서 먹어봤느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음, 집 근처 식당이요. 평냉 ‘애호가’들이 인정할 만한 맛집은 절대 아닌, 그저 접근성이 좋은 냉면집에서 먹어본 기억밖에 없었다.
“윤진이는 먹는 거에 진심은 아니야, 그렇지?”
처음 들었을 땐 그야말로 당혹스러웠다. 나처럼 잘 먹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친구들과 만나면 마지막까지 수저를 붙들고 ‘설거지’를 도맡는 내가? 하지만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들으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진짜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닌 건가?
난 정말 먹는 데 진심이 아닌 걸까
그 고민을 다시 떠올린 건 먼 유럽 대륙에서다.
추석 연휴,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 취재에 나선 국내 언론사 기자는 나와 타사 소속 B 두 명뿐. 예상보다 빡빡한 일정에 ‘이탈리아’다운 경험을 할 여유는 없었다. 피로가 쌓인 데다 빨리 기사를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둘 다 5일 내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밤이면 침대서 기절했고, 뭔가 특별히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저녁을 먹었다. 반면 B는 배가 부르거나 속이 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녁을 거의 걸렀다. 나는 먹었다. 호텔 룸서비스로 주문한 비싼 파스타는 밀가루 맛이 많이 났고, 미국이 본사인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이탈리아에서 사 먹었을지라도 저녁 식사를 했다. 누가 봐도, 이건 내 쪽이 ‘먹는 데 진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다 출국 전날 마지막 저녁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생겼다. 한 레스토랑에서 ‘밀라노 전통 음식’이라는 고기 요리와 사프란 리소토를 먹어볼 수 있었다. 돈가스랑 똑같다더니 진짜네, 신기해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경유지 파리 공항에서 B 씨가 물었다.
“어제 먹은 밀라노 음식, 어떠셨어요?”
‘보통이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B 씨는 본인 입맛에는 맞지 않았단다. 간이 세고 다른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어제 먹은 음식이 어땠는지 떠올렸다. ‘밀라노식 돈가스’는 굵은 소금이 씹히고 기름져서 많이 먹기는 어려웠다. 리소토는 괜찮았지만 이렇다 할 킥은 없고 느끼했다. 맛만 따지면 나도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어서 ‘한국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대화가 이어지자 나는 귀국해 뭘 먹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또렷이 그려지는 음식은 없었다. 그리하여 두 달 만에 질문으로 돌아왔다. ‘먹는 데 진심’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일까?
진심이란 무엇인가
‘먹는 데 진심이 아니다.’ 친구와 선배는 내가 먹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먹는 데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고 본 거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이건 표현의 모호함이 불러온 오해 아닐까.
‘먹는 것’이라는 표현부터 살펴보자. 나는 식사를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다.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식사다. 내게는 먹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당기지 않거나 맛없는 음식을 먹을 바에는 굶겠다고 먹는 게 먹는 게 아니라는 것. 요컨대 이들에게 ‘먹는 것’이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음식의 가치를 살피는 숭고한 일인 것이다.
‘진심’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진심(眞心)이란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다. A처럼 매 식사를 소중히 여기고 메뉴 하나의 가치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도 진심이다. 한편 나처럼 먹었다는 사실과 경험에 만족하는 것도 먹는 것에 대한 ‘진심’이다. 먹는 걸 거짓된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혹자는 이 유행하는 표현이 그렇게 싫다고들 한다.
무언가에 진심이라는 건 그냥 지금 내가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무엇에 대한 마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의 진심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1000여 개의 맛집을 저장해두고도 막상 무엇을 먹을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나의 마음조차도. 물론 비슷한 의미로 당신의 진심을 응원한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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