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디 베로나는 세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장소입니다. 그 마법을 한국에 가져오게 되어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형 오페라 공연의 대명사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음악감독을 2019년부터 맡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다니엘 오렌(69)은 자신의 지휘로 12~19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 감회를 밝혔다. 6일 입국한 그를 7일 숙소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호텔에서 만났다.
오렌 감독은 “거장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형상화한 작품 속 ‘군중’을 통해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1984년 푸치니 ‘토스카’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처음 지휘하신 지 40년이 흘렀고 그동안 이곳에서 500회 넘는 공연을 지휘하며 아레나 디 베로나의 ‘얼굴’로 활약해 오셨습니다. 이런 대형 오페라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큰 공간에서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연출이 가능합니다. 실내에서 불가능한 온갖 놀라운 일이 가능하죠. 이 점을 가장 잘 다룰 둘 알았던 사람이 이번 공연의 오리지널 연출을 맡았던 거장 프랑코 체피렐리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아레나 디 베로나에 오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는 결국 그를 설득했습니다.
체피렐리는 베로나에서 비제 ‘카르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했는데 특히 군중 장면을 다루는 방식이 남달랐습니다. 많은 연출가들이 군중을 단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게만 하지만 그는 군중으로 출연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외우며 각각을 중요한 인물처럼 취급했죠. ‘투란도트’에서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이미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체피렐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투란도트’를 연출했지만 이런 느낌은 큰 공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대형 오페라 지휘에는 어려운 점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2005년 베로나에서 만났을 때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템포로 무대를 강력히 끌어가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셨는데.
“아레나 디 베로나의 경우 가수와 지휘자 사이의 거리는 30m가 넘고 때로 50m가 될 때도 있습니다. 대형 공간의 오페라는 합창단과 성악진, 오케스트라 사이의 색깔을 맞추는 게 매우 복잡해집니다. 경험이 필요하죠. 하루아침에 지휘대에 올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나는 큰 공간에서 음악으로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지휘합니다.
예전 나폴리 부근의 큰 야외 공간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베르디 ‘레퀴엠’을 공연했던 때 기억이 납니다. 파바로티는 공연 분위기에 감동한 나머지 ‘오늘 개런티는 받지 않겠다. 극장장이 좋은 일에 쓰세요’라고 했죠. 나는 로마 올림픽 경기장에서 ‘투란도트’와 베르디 ‘아이다’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정말 멋졌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공연하느냐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더 중요합니다.”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의 오페라가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푸치니는 일본(나비부인)이나 캘리포니아(서부의 아가씨), 중국(투란도트)을 방문하지 않고도 그곳 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꿈꾸는 듯한 무대를 상정합니다. ‘투란도트’에서 우리는 얼음 같은 공주를 만나게 되자만 그 차가운 세상에서도 우리는 푸치니의 방식으로 사랑을 꿈꾸게 됩니다. 이게 푸치니의 위대한 점입니다.
내가 처음 지휘한 오페라는 푸치니 ‘마농 레스코’였습니다. 그때 푸치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집에 와서도 이 오페라의 모든 부분을 미친 사람처럼 불렀습니다.
푸치니는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악보에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를 지휘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음악은 모든 박자마다 변화가 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진 수많은 색감을 중간 정도로만 연주한다면 그것은 그의 음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부분을 여쭤보겠습니다. 열세 살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자신의 곡 ‘치체스터 시편’에서 솔로로 노래했는데….
“어머니는 저를 낳은 뒤 제가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며 이를 신께 기도하셨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음악을 인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아들을 원하셨죠. 그 바람은 실현된 것 같습니다. 열 살이 되자 어머니는 제가 노래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치체스터 시편’의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관계자들은 나이가 어리다며 저를 막았지만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번스타인과의 오디션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죠.”
―그 7년 뒤인 1975년 제1회 카라얀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너는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엔 맞지 않는다,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정해주신 분도, 불과 20살에 카라얀 콩쿠르에 나가야 한다고 하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당시까지 한 번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본 일이 없었죠.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비교한다면, 번스타인은 발끝부터 얼굴표정까지 온몸으로 음악을 지시했습니다. 리허설 중 휴식시간에도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가족에 관한 일들까지 물어봤습니다. 커다란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죠. 반면 카라얀은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려면 비서들을 먼저 만나면서 방 네 개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물론 카라얀은 매우 매혹적인 음색을 가진 훌륭한 음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오페라가 해외에서 공연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까.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오페라의 역사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레나 디 베로나가 한국의 음악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점이 기쁩니다. 어제 처음 연습에 임했습니다만, 한국의 음악가들은 정말로 뛰어난 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나라는 세계의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KSPO돔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 ‘투란도트’ 공연은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 옥사나 디카, 전여진이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 역을, 테너 마르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스가 칼라프 왕자 역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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