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현미경으로 본 애증이라는 병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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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에 이르는 병적 증오
양가감정 섬세하게 묘사
불편하면서도 몰입하게 돼
◇언니의 실종에 관한 48 단서들/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박현주 옮김/328쪽·1만8000원·위즈덤하우스

미국 뉴욕주 북부 시골 마을 오로라. 젊고 아름다운 여성 조각가 마그리트 풀머가 사라진다. 1991년 4월 11일 아침 여동생 조진에게 목격된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지역 유지이자 상속녀였던 마그리트가 사라지자 마을 일대가 뒤집힌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달아났다”, “납치를 당했다” 등 온갖 추악한 소문이 떠돈다.

조진은 경외하는 언니를 지키기 위해 남몰래 움직인다. 언니의 침실 바닥에 떨어진 섹시한 하얀 슬립 드레스를 경찰이 보기 전에 숨긴다. 언니의 내밀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도록 작업실에서 작품 노트를 모두 훔쳐 나온다. 웬 점성술사가 “언니의 행방을 알고 있다”며 접근하는 것도 차단한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선 조진의 열등감이 점점 커진다. 못생긴 자신과 달리 늘 주목받는 쪽은 예쁜 언니였다. 사라져서까지 관심을 독차지하는 언니가 더 미워진다. 비틀린 마음은 점점 극한을 향해 달려간다.

이 책은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이자 고딕 소설(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의 대가인 저자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인간 영혼에 도사린 악의와 공포에 대한 글을 주로 써온 작가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완벽한 언니를 향한 동경과 열등감으로 일그러진 인물의 내면을 촘촘히 묘사한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마그리트의 남자들이 점점 드러난다. 몇 달간의 짧은 연애 끝에 문자메시지로 마그리트에게 차인 코넬대 연구생물학자 월터 랭. 마그리트가 실종되기 전 뉴욕에서 그녀를 찾아온 랭은 그녀의 아버지만 겨우 만났다.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랭을 본 조진은 “언니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나야말로 당신에게 어울린다”고 외치면서. 조진은 공주님 같던 언니에게서 버려진 남자들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지만, 언니의 남자들은 조진에겐 관심도 없다.

작가는 동경하는 인물에 대한 양가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언니에 대한 조진의 악의는 그만큼 언니를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사랑하는 언니만큼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섬뜩한 악의로 바뀐 것이다. 자신과 비교되는 언니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도 갑자기 깎아내린다. “아름다움은 벌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고 끌려가야 하기 때문이며, 맨피부 그대로 쓸려야 하기 때문이다.” 광기에 어린 독백이 서늘한 공포를 자아낸다. 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혀 툭 내뱉는 독백은 불편하면서도 흡입력을 높인다.

극단적 증오는 점점 그 스스로를 파괴해 간다.

실종의 진실을 찾아 오래 헤맬수록 언니에 대한 점점 강한 증오를 표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언니와 얽힌 남자들이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로 몰리면서 피폐해지는 모습을 볼 때는 “인간에게 질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질투심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인물의 말로를 생생히 담은 작품.

#언니의 실종에 관한 48 단서들#조이스 캐럴 오츠#신작#장편 소설#애증#양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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