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주인공과 이웃이었다… 유족 “우연이자 인연, 감사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4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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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광주 북구 중흥동 한강 작가 생가는 2층 조립식 건물로 재건축돼 휴대전화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과 관련된 인연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는 과거 한 작가의 집 근처에 살았다.

12일 기자는 과거 한 작가의 생가가 있었던 광주 북구 중흥동을 찾아갔다. 한 작가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는 기존 건물을 허문 뒤 1997년 2층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고, 현재 휴대전화 판매점으로 운영 중이었다. 한 작가는 1977년 광주 북구 효동초에 입학해 1979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광주에 살 당시 그의 생가는 효동초에서 500m 거리였다. 휴대전화 가게 주인 김모 씨(42)는 “한승원 작가가 늘 조용하고 매너가 있으셔서 유명한 소설가인지 한강 작가의 부모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문 열사의 집은 효동초 바로 옆이었다. 문 열사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한 작가와 문 열사의 집은 직선거리로 불과 280m 떨어져 있었다. 효동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처음 시작된 전남대 정문 근처에 있다.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이 쏜 총에 숨졌다. 이후 광주 북구 망월동 묘지에 가매장됐다가 10일 후 가족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됐다. ‘소년이 온다’는 5·18 ‘막내 시민군’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 동호, 그리고 주변 인물의 아픔을 다뤘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아들 영정사진과 소년이 온다 책을 함께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문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85)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가 2010년경 효동초 인근 집을 찾아와 두 시간 동안 아들의 사연을 듣고 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당시 한 작가에게 “1980년 6월 7일경 생사불명이던 아들이 가매장된 망월동 묘를 파보니 관은 2㎝ 두께의 너무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져 관을 들면 시신이 떨어질 것 같았다. 시신은 알몸 상태로 광목천에 둘러 싸여있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김 씨는 “한 작가는 아들의 사연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간혹 질문을 했다”고 기억했다.

김 씨는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기쁨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렀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40여 년 동안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00번, 1000번 노력했지만 국내에도 다 전하지 못했다”며 “한 작가가 소설로 5·18진실을 세계에 알려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문 열사의 누나 미영 씨(62)는 “한 작가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동생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은 우연이지만 동시에 인연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 열사의 아버지 고 문건양 씨(2022년 작고)가 소년의 온다 책자 첫장에 써 놓은 글귀.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한 작가의 부친 한승원 작가는 “딸이 14살 때 은밀하게 숨겨둔 5·18 학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소년이 온다’를 쓴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딸은 5·18 이외에도 4·3사건을 쓰기 위해 제주에서 오래 살 정도로 소설밖에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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