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밀어 등 31개 언어로 번역된 ‘채식주의자’, 세계 독자 공감 넓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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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노벨문학상 한강]
영역본 중역 방식 지구 곳곳 소개돼… 英번역가 “여러 언어 번역 흥미로워”
스웨덴어로 모두 4개 작품 번역… 첫 현지 사인회 100명 몰리기도

“‘채식주의자’가 (남인도에서 쓰이는) 타밀어, 말라얄람어로 번역된 것을 보고 흥미로웠습니다. 언젠가는 힌디어로도 볼 수 있을까요?”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지난해 7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한강 작품의 번역 현황을 캡처해 올리며 이렇게 썼다. 한강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한강을 알려온 그마저 ‘채식주의자’가 생소한 언어로 여럿 번역된 상황을 알고 깜짝 놀란 것이다.

한강이 10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결 중 하나로 ‘문학적 확장성’이 꼽히고 있다. 일각에선 난해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한강의 작품이 폭력이라는 인류 보편적 문제를 건드려 울림이 크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세계 독자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것. 이런 문학적 확장성이 한림원의 수상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두드러지는 작품은 ‘채식주의자’다. 이 작품은 국내에 2007년 출간된 뒤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번역 출간됐다. 특히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당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2016년 수상하며 다른 언어 출간에 가속이 붙었다. 주요 언어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어, 갈리시아어 등으로 확장돼 지금까지 총 31개 언어로 번역된 것. ‘소년이 온다’는 몽골어와 아제르바이잔어 등 23개, ‘흰’은 카탈루냐어 등 16개 언어로 번역됐을 정도로 한강의 작품이 지구 곳곳에 소개됐다.

다채로운 출간본 표지도 해외 독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다.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 이스라엘 출간본엔 나체의 여성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꽃 속에서 뒹구는 사람이 그려진 대만 출간본, 여성 등 뒤에 커다란 꽃이 그려진 중국 출간본도 눈길이 간다. 브라질 출간본은 그로테스크한 무늬 속에 여성이 갇혀 있고, 세르비아 출간본은 머리가 6개인 여성이 자신의 얼굴 3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각국 특유의 감성을 담아내면서도 폭력에 저항하는 ‘채식주의자’의 의도를 잘 전달했다는 평가다.

해외에 소개된 대부분 작품이 스미스의 영역본을 ‘중역’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과거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오역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부커상과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치며 한강과 긴밀히 소통한 그의 작업 방식이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결국 전 세계의 문학은 영역본을 중역하는 방식으로 퍼져 간다”며 “결국 대부분의 소수 언어 번역가들은 한강과 데버라 스미스의 공동 작업 결과물인 영역본을 보고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한림원이 위치한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강 작품이 다수인 점도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현재 스웨덴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등 총 4권이 번역됐다. 특히 올해 3월 스웨덴에서 열린 한강의 사인회엔 1000명 넘는 독자들이 몰렸다. 이들이 1시간 넘게 줄 서서 사인을 받아 갈 정도로 한강에 대한 현지 관심이 높다. 특히 올해 스웨덴어로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 문학상 심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강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한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교수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스웨덴 출판계에서 한국 문학 작품의 판권을 사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타밀어#31개 언어#번역#채식주의자#세계 독자#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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