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1879∼1910)는 1910년 2월 처형 직전 뤼순감옥에서 ‘獨立(독립)’이라고 쓴 친필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을 남겼다. 글씨 왼쪽에는 약지가 절단된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뤼순감옥 간수였던 시타라 마사오(設樂正雄)가 안 의사에게 받았는데, 현재는 일본 류코쿠대가 이를 소장하고 있다.
이 유묵을 비롯해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안 의사의 유묵 4점이 15년 만에 국내를 다시 찾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4일부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기념하는 ‘안중근 書(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일본에서 온 유묵과 국내에 있는 유묵을 합해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쓴 유묵 18점(보물 1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유정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인 ‘응칠’(應七)에서 착안해 애국, 평화 등 7가지 이야기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유묵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립 유묵’은 전시실의 중심 공간에 배치돼 눈길을 끈다. 간결하게 쓰인 두 글자의 필체에서 힘이 느껴진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고 쓴 유묵은 안 의사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보여준다.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 유묵은 교육을 중시한 안 의사의 철학이 담겼다. 안 의사는 1906년 평남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은 대한제국 의병으로 거사를 결행한 안 의사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인을 이룬다)’ 역시 자신을 희생해 큰 뜻을 이루겠다는 안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 구름 같도다)’은 안 의사의 장부로서의 비장함과 의사로서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글씨 외에도 안 의사의 삶을 보여주는 50여 점의 자료를 함께 전시해 국권회복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가 애국계몽운동에서 하얼빈 의거까지 안중근 의사의 행보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3월 3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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