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현대 매너의 변천사 다뤄
로마 시대엔 계급적 구분 수단
영국식 젠틀맨은 산업화 산물
◇매너의 역사/설혜심 지음/672쪽·3만8000원·휴머니스트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에서 최고급 슈트를 입은 젠틀맨 해리 하트가 무례한 불한당을 손보기(?) 직전에 내뱉는 대사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까지 이들을 두들겨 팬 이유는 ‘매너 없음’이다. 사실 해리의 이 명대사는 지어낸 문구가 아니다. 14세기 영국 주교 위컴의 윌리엄이 1382년 윈체스터 스쿨을 설립하면서 학교의 모토로 쓴 문구다. 당시 그는 매너를 단순히 정중한 행동이 아니라 도덕과 교육이 합일되는 과정으로 봤다.
서양사학자로 생활사 연구로 정평이 난 저자는 이 책에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천한 매너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말까지 분석했다. 이를 위해 유럽 각국의 처세서와 지침서, 편지 등 100여 권의 문헌을 섭렵했다. 기존 주류 역사학에서 잘 다루지 않은 매너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저작이다.
보수주의의 대부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매너가 법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매너는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야만으로 만들거나 세련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양 문화에선 수많은 매너가 존재한다.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매너는 덕을 갖춘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이를 구별하는 표지였다. 하지만 로마의 키케로가 등장하면서 매너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수단이 되어갔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엘리트가 갖추어야 할 요소로 매너를 처음 언급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선 프랑스의 궁정 예절이 매너의 근간이 됐지만, 18세기 산업화와 더불어 귀족이 아닌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소탈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식 젠틀맨 매너가 주류를 이뤘다. 20세기 들어서는 계급적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 구별 짓기의 단위가 계급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책은 매너가 사회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벗어난 만큼 모두에게 적용되는 의미와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역설한다. 매너는 자신과 남에 대한 존중이자, 그 존중을 행동으로 주고받는 기쁨이기도 하다. 저자는 “좋은 매너는 더 나은 관계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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