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규모 로비-美 정치 분석… 17년 전 출간 당시 미국서 논란
중동 전쟁 상황 맞물리며 재조명… 이스라엘, 전략적 가치 시효 끝나
냉전 종식 후 美 안보 위험 요소로… 중동 내 반미 정서 부추겨 中 부상
◇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는가/존 J. 미어샤이머, 스티븐 M. 월트 지음·김용환 옮김/508쪽·2만4000원·크레타
11월 5일 치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겸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은 낙태나 동성 결혼, 세금, 이민문제 등에선 입장이 극명히 갈린다. 하지만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다. 어느 후보도 ‘보복 전쟁’에 열을 올리는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내에 견고하게 구축된 이스라엘 세력의 힘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신간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공저했다. 특히 미어샤이머는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러시아의 침공을 불러올 거라고 예측했고,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더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대정부 로비가 중동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는 30만 명의 개인 기부자가 막대한 기금을 조성해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 언론계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다. 각종 선거 기간에는 캠프들에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한다. 선거자금 조성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삼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1948년 건국전쟁(제1차 중동전쟁)부터 올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위한 군사·경제 원조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이제 미국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각이다. 미소가 팽팽히 대립한 냉전 때는 중동 지역에서 동맹의 가치가 컸지만, 냉전 종식 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지나친 친이스라엘 정책이 중동 내 반미 감정을 자극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9·11테러에서 보듯 과도한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핵심 공격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를 정면에 내세운 이 책은 2007년 출간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미어샤이머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반유대주의 서적으로 낙인찍혀 미국 내에서 북콘서트나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출간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두 석학이 지적한 미국 중동 정책의 현실과 대안은 여전히 적실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최근 확전과 더불어 막대한 민간인 희생자를 낳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확실히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만류를 외면한 채 일방적인 군사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의 패권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편중 정책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중동에서 반미 정서로 미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고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 미국 정부와 정치권이 ‘폭주’하는 이스라엘을 왜 제어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알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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