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먹고 살아갈 힘 냅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8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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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요리 전문가가 서울 여의도 ‘살롱 드 이꼬이’ 쿠킹 스튜디오에서 데친 생고사리로 아침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아침밥의 로망을 나흘간 채워줬던 이꼬이(ikkoi), 또 올게요. 나영.” 방송인 김나영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는 서울 용산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 ‘이꼬이’를 운영했던 정지원 대표가 2014년 문을 열었다. 이꼬이는 동네 시장에 있던 작은 식당이었지만, 패션·광고업계 종사자 등 세상 멋쟁이들이 모여 하이볼에 우동 샐러드를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보내던 이름난 심야식당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서울의 이꼬이를 추억하는 이들이 제주를 찾으면 묵는 곳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다.

방송인 김나영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에 남긴 방명록.

제주의 다양한 숙박 시설을 제쳐두고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 대표가 직접 차려주는 아침밥 때문. 제주 민속오일장에서 장을 본 제철 채소로 만든 반찬,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짓는 고슬고슬한 솥밥, 무엇보다 1인당 한 마리씩 인심 좋게 구워 나오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생선…. 이 든든한 아침밥상의 환대가 많은 이들의 쓸쓸한 마음을 환하게 채워왔다. 어느덧 만 10주년 된 이곳의 방명록에 채워진 글들이 ‘아침밥의 위로’를 증언한다.

“머릿속을 비우고 맛있는 아침밥으로 영혼을 채우고 몸과 마음에 쉼을 주고 갑니다.”
“요즘 마음이 허했는데 신기하게 마음까지 배부른 기분이네요. 윤기 나는 솥밥이 하루의 시작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나요.”
“평소에 챙겨 먹지 않던 아침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어요.”

어느 투숙객의 방명록.

오랜 투병 끝에 홀로 제주 여행을 하면서 식단 관리가 중요했던 한 투숙객은 이런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깔끔한 조식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양희은 님의 ‘네가 있어 참 좋다’라는 노래가 흐른다. 순간 떠오른 느낌, 생각. ‘그래, 여기에 머물고 갈 수 있어 참 좋다’. 여자 혼자 뚜벅이 여행으로 떠나온 열흘 동안 이곳이 있었기에 저녁이면 돌아와 정갈한 잠자리와 음식으로 휴식을 가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정성껏 짓는 솥밥(위)과  나물을 볶는 프랑스 팬.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매일 아침 정성껏 짓는 솥밥(위)과 나물을 볶는 프랑스 팬.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다들 ‘셰프님’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주인장’으로 불리기 원하는 정지원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대표를 16일 만났다. 그는 겨울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살롱 드 이꼬이’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요리 전문가다. 이날 그는 시금치 깨 소스 무침, 데친 고사리 볶음, 아삭아삭 연근조림, 톳 조림, 전갱이구이, 알배추 양파 된장국, 당근 샐러드, 솥밥으로 아침 밥상을 차리고 디저트로는 무화과 와인 조림을 준비했다.

재료와 조리법, 식감과 색상을 겹치지 않게 차려낸 아침밥상.

-어떤 기준으로 아침밥상을 차립니까.
“100%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재료, 조리법, 양념 베이스를 겹치지 않게 해요.간장 조림이 있으면 소금 간을 한 볶음 요리, 깨 소스나 두부로 무친 무침 요리를 곁들이죠. 그러면 식감도 겹치지 않거든요. 가능한 색상도 겹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침밥에 왜 그토록 진심입니까.
“그저 재료 하나하나에 집중해 최소의 양념으로 투숙객을 위한 아침밥을 준비했어요.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해주셔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던 아침밥, 그 밥심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제는 고인이 된 아빠가 늘 일찍 출근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매일 아침밥을 일찍 먹었죠. 아침밥은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에요. 제주 이꼬이앤스테이의 아침밥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가 힘을 내겠다는 반응들을 보고 ‘아침밥은 그렇게 살아갈 힘을 주는구나’ 깨달았어요.”

-지난해 ‘이꼬이에 놀러 왔어요’라는 요리책도 펴내셨습니다.
“어느 남자 손님이 따뜻한 아침밥 냄새에 얼굴이 환해지셨어요. 평소 당근을 먹지 않던 꼬마 손님들이 제가 만든 당근 샐러드를 먹고 ‘더 주세요’ 할 때엔 ‘내가 그동안 해 온 일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싶어 또 하루를 열심히 살게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따라 만드실 수 있도록 레시피를 공개하고 제주의 추천 명소들도 소개했어요.”

아침 밥상을 차리고 있는 정지원 대표.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평소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저녁은 가능하면 충분한 채소를 먹고 탄수화물은 절제하려고 해요. 제주 민속 오일장에서 채소를 6끼니 정도 먹을 분량을 구매한 뒤 손질해 용기에 소분합니다. 샐러드 스피너와 가정용 진공기를 집에 갖춰두면 편리해요. 채소는 물기를 탈탈 털어 키친타월을 깔고 보관하면 사흘 정도 먹을 수 있거든요. 가정용 진공기로 진공 포장해 냉동실에 넣으면 수분 손실이 적어 일반 냉동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저는 비트를 제철에 왕창 사서 오븐에 구운 후 진공시켰다가 먹어요.”

-어릴 때부터 아침밥을 지어주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아침밥을 해드립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투병하실 때 엄마가 내내 곁에서 고생하셨어요. 그런 엄마를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밥을 차려드리는 것이더라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아침 반찬인 톳 조림, 더덕 무침, 감자 샐러드, 일본식 계란말이를 했죠. 최근에서야 엄마가 진미채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돼 진미채 무침을 해드렸더니 따뜻한 흰 밥에 드시면서 행복해하셨어요.”

-아침밥에는 정말로 위대한 힘이 있나요.
“아침밥을 예찬하는 방명록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아침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 ‘따뜻함’, ‘치유’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지은 뒤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치면 정작 저는 점심에 가까운 늦은 아침을 먹지만, 저의 마음이 아침 밥상에 그대로 전달되는 걸 느끼니 좋은 에너지와 정성을 담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최인아 씨가 쓴 책에서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란 구절을 읽고 울컥했어요. 그 삶의 태도를 매일 생각합니다.”

‘이꼬이’ 추천 아침 밥상 반찬 레시피



당근 샐러드〉
재료: 당근 1개(180g 전후), 양파 1/4개, 다진 마늘 1작은술, 포도씨유 약간, 화이트 와인 식초 1큰술, 씨 겨자(홀그레인 머스터드) 1큰술

1. 당근과 양파는 채 친다. 마늘은 칼로 곱게 다진다.
2. ①의 재료를 모두 섞어 전자레인지 용기에 담고 포도씨유를 한 바퀴 두른 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린다.
2. ②에 화이트 와인 식초, 씨 겨자를 넣고 잘 섞은 후 한 김 식혀서 보관한다.


데친 고사리 볶음〉
재료: 데친 생고사리 250g, 돼지고기 50g, 다진 생강 약간, 간장 2큰술, 들기름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1. 데친 생고사리는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간장 1큰술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15분 정도 그대로 둔다.
2. 돼지고기는 가늘게 채 친다.
3.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생강을 넣어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는다.
4. 돼지고기가 하얗게 변하려고 하면 준비한 ①의 고사리를 넣고 볶는다.
5. 고사리 숨이 죽으면 남은 간장 1큰술과 소금 약간을 넣고 한 번 더 볶은 다음 불을 끄고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다


아삭아삭 연근조림〉
재료: 연근 400g, 마른 홍고추 1개, 포도씨유 약간 조림 소스 간장 4큰술, 설탕 2큰술, 청주 2큰술

1. 연근은 껍질을 벗긴 후 조금 큰 한 입 사이즈로 자른다.
2. ①을 찬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3. 조림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홍고추를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손질한 연근을 넣어 볶는다.
4. ③의 팬에 간장, 설탕, 청주를 넣고 중간 누름 뚜껑을 덮어 센 불에 올린다. 끓어오르면 중약 불로 줄이고 15분간 조린 후 불을 쓰고 조린 팬에서 완전히 식힌다. 중간에 두세 번 위아래를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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