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곡선이 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유에프오(UFO) 같기도 하고, 인체의 장기 같기도 하고, 숨쉬는 고래상어나 문어 같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다채로운 조명쇼가 펼쳐지기도 하죠. 패션 지망생들은 이 곳에서 화보촬영을 많이 하고,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인증샷을 찍는 명소입니다.
DDP는 유선형 건물로, 알루미늄 패널이 가득 붙어 있어 있습니다. 이런 미끈미끈 둥그런 지붕 위를 걸어다닌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그런데 서울시가 DDP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건물 지붕을 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다음달 17일까지 시범운영되는 ‘DDP 루프탑 투어’입니다.
기존에도 DDP 건축투어는 상설로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루프탑 투어는 기존 DDP 실내외 공간투어를 넘어 비정형 알루미늄 패널과 사막식물 ‘세덤’으로 이뤄진 DDP의 숨겨진 공간이었던 지붕 정원까지 올라가볼 수 있는 투어입니다.
2014년 개관한 DDP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마지막 작품 ‘환유의 풍경’입니다.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른 4만5000여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된 건축물이죠. 동대문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기둥없는 곡선’으로 설계됐습니다.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 1억명을 넘어선 서울 관광의 핫플레이스입니다.
루프탑 바로 아래까지 가보니 알루미늄 패널이 붙어 있는 천장 구조물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 지를 알겠더군요. 이런 모양의 수많은 파이프로 트러스 구조를 만들어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루프탑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먼저 안전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기념 촬영을 할 때 들고 있을 수건에 펜으로 문구를 적습니다. ‘Visit Seoul Again!’을 비롯해 자신이 원하는 축하, 사랑, 합격 등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전용 고리를 달 수 있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안전헬멧을 씁니다.
참여자들은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인 독일 DEKRA 인증을 획득한 안전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참가자는 10명이지만 앞뒤로, 중간에 안전요원들이 5~6명이 동행합니다.
매뉴얼에 따라 투어가 진행되는데요. 서울시는 투어에 앞서 중부소방서·대한산업안전협회 등 안전전문가의 점검과 지붕 구조안전성 검토 등 9개월간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네요.
DDP 지붕 위에 올라가면 남산부터 동대문까지 탁트인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의 패션 상가와 함께 어우러지는 DDP의 곡선이 낯선 느낌을 주는 이국적 풍경입니다. 서울에서도 이런 앵글의 사진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에 찾아오게 될 해외 관광홍보를 위해서라면 DDP의 옥상도 개방할 수도 있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굳이 서울시가 서울의 관광을 직접 홍보하지 않더라도, DDP에 올라온 외국인들이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의 아름다운 건축과 역사, 문화가 홍보될 것이라는 이야기죠. 오 시장은 간담회에서 “아름답고, 재미와 흥미가 넘치는 관광 포인트를 많이 만들어놓은 것이 서울시의 역할”이라며 “전국민이 인플루언서인 시대에 좋은 포인트가 많으면 홍보는 저절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면 몸에 착용한 하네스에 안전고리를 걸고, DDP지붕 위에 설치된 강철 철사 줄에 연결합니다. 지붕은 경사가 져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고리를 거는 것이죠. 안전 로프에 고정돼 있는 고리는 참가자들이 자의적으로 풀기 어렵게 돼 있습니다.
안전로프에 연결된 줄은 3m까지 늘어납니다. 자동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반려견 산책줄과 동일한 원리인데요. 순간 내가 DDP에 매달려 있는 반려견이 된 느낌이 듭니다. 이 줄을 믿고 마음 놓고 사진을 찍고, 포즈도 취해봅니다.
호주 시드니의 명물인 하버브릿지를 올라가는 투어를 할 때도 이런 안전장치를 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철제 구조물에 몸을 안전하게 고정하며 이동하는 장치죠.
투어는 DDP 지붕 일부 총 280m를 30여분간 직접 걷고 즐기는 코스입니다. 이날 투어 참가자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여성과 프랑스에서 온 남성이 함께 했는데요. “서울의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너무나 재밌는 탐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시범운영 후 내년에는 코스를 확대하고, 다양하게 개발해 봄(5월)과 가을(9~10월) 시즌에 DDP 정식 콘텐츠로 유료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DDP지붕 위에 걷는 부분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미끄럼방지 패널을 붙여놓았습니다. 또한 밟는 부분에는 파이프가 지나가는지 더 딱딱하더군요. 반면 지나가는 길로 지정되지 않은 부분은 좀 얇아서 체중이 꽤 나가는 사람은 바닥이 약간씩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금, 토, 일 사흘 동안 하루 두번(오후 1시 30분‧3시 30분) 총 24회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만 18세~70세 성인이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단, 몸무게는 100kg 미만으로 제한됩니다. 1회당 투어 인원은 안전을 고려해 10명으로 한정했습니다. 투어 할 때 기념수건을 제공해주는데요. 투어 관계자들이 지붕 위에서 수건을 들고 인생샷을 찍어 줍니다.
시범 기간 중 투어 참여자는 약 220명입니다. 이중 120여명은 미리 사연을 보낸 사람 중에서 선정됐습니다. 또한 파리올림픽·전국체전 서울시 선수단, 디자이너, 동대문 지역상인 등을 초청해 진행합니다. 100명은 선착순으로 접수 받았는데 수만명이 몰리는 오픈런으로 벌써 끝났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투어 첫날에는 결혼, 창업 등 특별한 사연을 보낸 1088명 중 선발된 시민 20명과 함께했다고 합니다. 참가자 중에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늦깎이 대학생이 된 엄마, 한국문화와 서울 매력에 푹 빠진 외국인 유학생, DDP 취업박람회에서 처음 만나 앞으로 인생을 함께 설계 중인 예비부부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DDP 지붕탐험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DDP 지붕 위에도 정원이 있다는 점입니다.
저렇게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얄루미늄 패널 위 지붕 위에서 식물이 살 수 있을까? 사막식물인 ‘세럼’이 심어져 있습니다.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다육식물 종류라고 하네요. 봄이나 여름에는 다른 종류의 꽃도 피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가을이라 갈색 빛깔의 지붕입니다.
지붕 위 정원에서 보면 옛 동대문 운동장 시절의 유물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야간경기에 경기장을 밝혀주던 조명탑입니다. 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청계천과 연결시켜주던 이간수문도 보입니다.
루프탑 투어 전에는 평소 가볼 수 없는 DDP의 숨은 공간을 투어합니다. 이날 가본 곳은 DDP의 난방, 공조, 쿨링, 환기 등을 담당하는 기반시설 공간이었는데요. 이런 공간인데도 깔끔하게 잘 정돈이 돼 있더군요.
알루미늄 패널로 덮인 DDP의 경우 창문도 없는데, 어떻게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궁금했는데요. 일부 패널 중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네요.
설비를 위한 공간에는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패널이 있네요. 지붕에 있는 패널 중에는 태양열 발전판으로 사용되는 패널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1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DDP 루프탑 투어는 서울 도심의 매력을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는 서울시의 또다른 매력 콘텐츠”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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