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세상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성찰
◇침묵하는 우주/폴 데이비스 지음·문홍규, 이명현 옮김/420쪽·2만2000원·사이언스북스
폴 데이비스는 과학 교양서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끈 작가다. 특히 그의 책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는 1980년대에 큰 주목을 받았다. 인기의 이유 중에는 제목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원제는 다소 평이한 ‘God and the New Physics’, 그러니까 ‘신과 새로운 물리학’ 정도다. 그런데 한글 번역판이 나올 때 눈길 끄는 제목을 썼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가 과학책에 이야기를 부려 놓는 방식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이런 강한 제목에 어울리는 작가다. 주로 우주와 과학의 가장 근원적인 지식이나 아주 멀리 나가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이야기로 핵심을 잡는다. 그의 책에서는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어떤 모습이었는가, 우주는 얼마나 큰가, 우주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와 같은 의문에 대한 연구 성과를 충실히 소개한다. 이런 내용을 풍부하게 잘 다루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을 이어 가는 것이 그의 뛰어난 장기다.
데이비스는 삶의 의미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부드럽게 이어 붙인다. 그럴 만하지 않은가? 우주가 앞으로 수백억∼수천억 년 정도 지나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듣고 나면 독자는 ‘애초에 우주는 왜 생겨났고, 왜 사라지는 걸까? 이게 다 무슨 짓인 걸까?’라는 의문에 빠지기 십상이다. 저자는 이런 상태가 된 독자를 바로 그 의문 속으로 더 깊이 빠뜨리는 글을 써내려 간다.
근래에 나온 그의 신간 ‘침묵하는 우주’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외계인에 대해 다룬 책이다. 외계인이 과연 있을지 없을지, 있다면 얼마나 많이 있을지와 같은 기초적인 의문부터 외계인과 생명의 의미에 대한 성찰까지 파고들어 간다. 공상과학(SF)이나 신기한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끌릴 수밖에 없는 주제다. 외계인 이야기를 충실히 다루면서 그의 주특기를 살려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곁들였다.
예를 들어 만약 우주에 외계인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과 문명은 우리 지구에만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넓은 우주에 왜 우리가 사는 곳에만 생명이 깃들게 되었을까. 도대체 지구가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이기에 마치 선택된 곳처럼 생명이 자라는 유일한 곳이 되었을까. 반대로 만약 우주 곳곳에 외계인이 많다면 왜 그 많은 외계인은 지구를 찾아오지 않는 걸까. 또 생명과 문명이 우주 어느 한구석의 어떤 행성에서든 우연히 탄생해 멸망하는 것이라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백 년쯤 살다 가는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 모든 고민거리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우주에 대한 신비 속에서 사색하도록 해 주는 책이 ‘침묵하는 우주’다. 1980년대부터 활약한 데이비스가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쓰다니. 이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독자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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