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숭실대 이성락 등단 (박수)
하취하사호(何取何捨乎)
먼저 여러분에게 미안한 말씀을 드릴 것은, 제가 평양 사람이라 방언이 섞여 여러분에게 불편될 점이 있을 듯하니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그말은 그만 두라고 청중들이 본론을 제촉).
자공이 공자께 정사를 물으니 공자는 “족식족병(足食足兵)”이라 안으로는 백성이 굶주림 없고 밖으로 외환이 없으면 나라에 근심이 없으리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공도 현인이라 다시금 무엇을 제일 먼저 하릴까 하고 물었습니다. 공자같은 성인을 스승으로 모신 제자에 영광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역사도 없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상공업도 없고 농업도 없으며 산에 나무와 강에 물이 없고 만가지 시설이 하나도 없고 천가지 만가지 모두다 남에게 뒤떨어졌습니다(박수).
그러니 우리는 이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만은 일시에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라마(羅馬)의 문명은 이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룬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우리에게 취할 바와 버릴 바가 있습니다(박수).
우리에게 그 숭고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매워 이상을 높이하는 것이 필요하나 식산(殖產)과 공예(工藝)에 비할 바가 아니니, 가령 굶주린 사람이 길에 누었다 하면 그에게 철학이나 문학 같은 것을 가르쳐주겠습니까? 밥을 먼저 주겠습니까? 또 돈은 한가지를 살 것 밖에 가지지 않은 사람이 담배를 사겠습니까, 밥을 사겠습니까? 모든 것이 밥을 먹은 후에 주머니가 튼튼하여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박수).
증자(曾子)의 양지(養志)도 양구체(養口體)를 먼저 하여야 할 것이오, “윌손”이 부르짓는 정의 인도(正義人道)도 제 주머니가 차고 남은 후의 일입니다(박수. 청중 열광).
지금 우리 조선이 어떻습니까? 조상이 피와 땀으로 남겨준 땅을 버리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뜨거운 피눈물을 뿌리며 만주와 시베리아에 유리표방(流離漂放)하는 동포가 무엇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무엇을 먼저 주어야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빵을 주고 옷을 입혀야 되지 않겠습니까?(박수. 청중 열열광)
그 뿐입니까? 당장 기근으로 인하여 방금 나뭇잎과 풀잎을 먹다가 그도 못하여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습니까?(박수).
그들에게 철학을 주어야되겠습니까, 문학을 주어야되겠습니까? 무엇보다 빵을 주어라(박수).
초유본말(初有本末)하고 사유시종(事有終始)이라고 대학에도 있는 말과 같이 모든 사물의 본말을 잘 알고 그리고 선무취사(先務取捨)를 잘 알 것 같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배워 정신의 위안을 얻고 농공상을 일으키어 물질의 위안을 얻고자 하나 사람이 있어야 하고 경제가 허락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천만원이 없어서 민립대학 하나를 못 세우지 않습니까? 이것은 물론 자산가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돈이 없는 까닭입니다(박수).
사람들은 말하기를 외국에 유학하는 사람이 많으니 차차 사람이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합니다마는 그들에게 돈이 없어서 밥 얻어먹기에 공부할 겨를이 없습니다. 학생보다 노동자라고 부르는게 적당할 줄 압니다(박수).
경제계가 이래갖고야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신과학인 철학문학보다 자연과학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실제를 배우고 물질적 현상을 배워야되겠습니다. 연애에 실패하고 한강수 깊은 물에 어쩌고 어쩐다는 연애소설을 쓸 여유가 있거든 질소와 수소가 물이 되는 법을 알아야겠습니다(박수. 열열광).
녹음이 우거진 밑에 서늘하게 누워서 우주의 현상을 생각하기보다 들과 산에 나가 동식물표본을 채집하여 배우는 공부에 열열열열심할 것입니다(만장 환희 박수 연발).
우리의 처지가 이같으니 먼저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두가지 다 완성되는 때에는 삼천리강산에 무궁화가 되고 이천만 민중이 그 밑에서 춤을 출 것입니다 (열열열열열광 박수)(9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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