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아버지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올 7월에 와이오밍주에 있는 사촌 집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의 편지와 글이 많이 발견됐는데, 한국 기독교와 근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188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미국 북장로회)가 국내(인천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꼭 140주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미래재단(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지난달 27일~2일 미 동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 있는 아펜젤러, 언더우드(1859~1916), 알렌(Allen·1858~1932), 마펫(Moffett·1864~1939), 전킨(Junkin·1865~1908) 등 한국에 기독교를 알리고 개척한 선교사들의 고향과 학교, 생가 및 자료가 보관 중인 선교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 뉴저지주 메디슨에 있는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chool)에서 만난 쉴라 플랫(Sheila Platt·76) 여사는 기자단에게 아펜젤러의 미공개 자료들이 최근 발견된 사실을 알리며 “나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장남(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막내딸이 플랫 여사의 어머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드류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조선 선교를 결심했다. 드류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 고문서실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와 편지, 자료 등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보낸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연구 중이다.
교정을 온통 뒤덮은 노란 단풍이 인상적인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신학교(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는 뉴욕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던 언더우드가 1881년 이곳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운 곳. 맥크리어리(McCreary) 총장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출신 선교사는 언더우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라며 “훌륭한 선교사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조선에서 그가 보인 역할과 모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언더우드 컬렉션’이 있다. 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선교사 중 개인 컬렉션 홀은 언더우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언더우드의 묘지는 28일 방문한 뉴저지주 노스버겐 ‘그로브 개혁교회’에 있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묘비만 남기고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으로 이장했다.
“와, 끝이 보이지 않는데?” 3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역사협회(PHS)’ 지하 자료보관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문자들을 압도시켰다. 빼곡히 늘어선 양측 서가 사이로 난 좁은 복도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곳은 1852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단 기록보관소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 보고서,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담은 함만 3만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았던 사진 상당수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아직도 연구·조사하지 못 한 게 더 많다고 한다.
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은 “주요한 몇몇 분의 활동과 업적은 잘 알려졌지만, 다른 많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활동은 조사·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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