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이자 ‘골드 버튼’ 유튜버인 곽윤기(35)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쇼트트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30년 넘게 이어오는 습관이다. 곽윤기는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침대에서 일어나야 어떤 일이든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쇼트트랙과 유튜버 중 어느 쪽이 ‘본캐’인지 ‘부캐’인지는 의미가 없다. 두 분야 모두 할 수 있는 데까지 잘하고 싶은 게 그의 생각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하려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전 5시 기상은 그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다.
곽윤기는 어릴 적부터 특유의 끼가 넘치는 선수였다. 2010년 밴쿠버 겨울 올림픽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시상대 위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춤, 일명 ‘시건방 춤’을 췄다.
경기 중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2014년 소치 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고,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노 메달에 그쳤지만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5000m 계주에서 생애 두 번째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시상식 때 BTS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췄다. 세 차례 올림픽 출전에 은메달 두 개를 딴 ‘선수’ 곽윤기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 대회에서도 수많은 메달을 따낸 수준급 스케이터로 평가받는다. 올림픽 금메달 빼고는 모든 걸 다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더욱 각광을 받게 된 것 자신의 끼를 살려 유튜버 크리에이터 생활을 병행하면서부터다. 그는 2019년 8월 1일 처음 자신의 이름을 딴 ‘꽉잡아윤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선수로서 올림픽 때만 반짝 관심을 받는 게 속상했다. 모든 선수들은 4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하는 게 그 과정들을 좀 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단지 빙상 종목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의 매력을 좀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쇼트트랙 연구자이자 스포츠텔러라고 소개한다.
그는 유튜브에 쇼트트랙을 기본으로 다양한 종목을 소개하고 개인 일상을 알린다. 꾸준한 노력 끝에 2년 만에 10만 구독자 돌파하며 ‘실버 버튼’을 받았다.
그리고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그는 100만 구독자, ‘골드 버튼’의 주인공이 됐다. 베이징 대회에 선수로 출전한 그는 경기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대표팀과 선수촌 영상들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올림픽 전 10만 명 대이던 구독자 수가 올림픽 중간쯤 50만 명을 돌파하더니 남자 계주 5000m 은메달 뒤에는 100만 명을 넘겼다. “한국 최초의 성공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유튜버가 되겠다”는 그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4일 현재 구독자는 10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97만8000여 명이다.
유튜브 촬영과 응원을 겸해 지난 여름 파리 여름 올림픽에도 다녀왔다. 개막전 전날 파리에 도착해 폐회식까지 보고 돌아왔다. 동계 종목 선수인 그에게 파리 올림픽은 신세계나 마찬가지였다. 평소 여름 올림픽이 열리는 즈음이 스케이트 선수들에게는 전지훈련을 하는 때였기에 그 동안은 주로 TV로만 여름 올림픽을 봤다.
곽윤기는 “쇼트트랙 선수로 뛰면서 목표로 했던 올림픽 금메달은 따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후배들을 응원하면서 내 눈으로 10개가 넘는 금메달을 봤다”며 “경기 후 만난 몇몇 친한 선수들은 자신들이 딴 금메달을 내 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걸어본 것 자체가 행복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은 ‘선수’ 곽윤기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선수는 유니폼을 입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걸 새삼 깨달을 것이다. 그는 “한 때는 올림픽 금메달에 목말랐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파리 올림픽에 와서 보니 메달 유무나 색깔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를 향해 모든 걸 쏟아붓는 진정성이 정말 울림이 컸다”며 “그동안 곽윤기를 응원해주셨던 팬들에게 다시 한번 나도 그런 살아있는 눈빛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5월부터 서서히 운동을 재개했던 그는 파리 올림픽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한창 선수 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매일 오전과 오후 등 두 번에 걸쳐 스케이트 훈련과 지상 훈련을 한다. 하루 쉬는 일요일에도 유연성 훈련 등을 하기 위해 스포츠센터를 다닌다.
목표는 2026년 열리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이다. 그는 “매번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은퇴를 생각했다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다시 준비를 했다. 매번 거짓말을 한 것 같지만 이번이 정말로 내 스케이트 인생의 ‘라스트 댄스’가 될 것”이라며 웃었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정수(35)의 존재도 그에겐 큰 자극이 됐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2관왕인 이정수는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다가 2024~2025년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에 올라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계주 멤버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 투어에 출전하고 있는 이정수는 내년 2월 열리는 하얼빈 아시안게임에도 나간다. 곽윤기는 “친구인 이정수의 복귀 하면서 안된다고 생각했던 나를 일깨워 줬다”고 했다.
그렇다고 유튜버로서의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훈련하는 틈틈이 짬을 내 영상을 찍고 업로드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가성비 촬영을 좋아한다. 생각나는 아이템이 있으면 가능한 한 한두 시간 안에 촬영을 마무리하는 편”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창작의 고통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어려움은 없다”며 “오히려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활동 반경이 무척 넓어져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도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에는 메이저리그의 초청을 받아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서울, 영국 런던, 멕시코 멕시코시티 등에서 열린 홈런더비 X에 참가했다. 지난달에는 대전에서 열린 하나은행 자선축구대회에 출전해 트로트 가수 임영웅, 축구 선수 기성용 등과 함께 공을 찼다. 5월 서울 한강에서 열린 제10회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튜버 활동을 하면서 그는 각종 광고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치킨, 맥주, 화장품, 커피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는 선수 활동와 유튜브 활동, 그리고 광고를 통해서 번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2022년 동해안 산불 이재민을 위해 3000만 원을 기부했고, 작년에는 자선 바자회를 열어 모은 1000만 원을 세브란스 의료원에 기부했다. 올해는 청소년 운동선수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 원을 내놨다. 그는 “제가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이 제 유튜브를 시청해 주시는 분들로부터 나온 수익이다. 광고 역시 팬들이 좋아해 주셨기에 찍을 수 있었다”며 “팬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곽윤기는 잘 먹고, 잘 자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그는 “쉬는 것도 운동”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할 때 절대 무리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며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골절 부상이나 안면 부상 등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면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멍때리기 대회 3위라는 순위가 말해주듯 그는 쉴 때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쉰다고 했다. 스케이트나 유튜브에 대한 스위치도 완전히 끈 채 완벽한 휴식을 취한다. 그는 “쉴 때만큼은 내가 가장 기분 좋은 걸 하려고 한다. 햇빛을 받으며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성공한 유튜버인 그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누군가 가지 않았던 길을 가보고 싶다”며 “1등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베스트 원’ 보다는 ‘온리 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선수와 유튜버로 열심히 살아가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찾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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