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한 심지처럼 선 여인. “용서를 비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그녀는 곧 무정한 국가이자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였고, 남자들은 그녀에게 빠져 익사했다. 검은 파도가 날름대는 벼랑 끝에서 평생 자신을 불태운 여왕 메리가 객석의 숨통을 옥죄며 말했다. “아무도 없다.”
1, 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역으로 선 연극 ‘메리 스튜어트’가 아시아 초연됐다. 생존보다는 역사에 남기를 원했던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1인극. 사별과 암살로 끝난 세 번의 결혼, 왕위를 빼앗긴 뒤 18년간 이어진 감금 생활, 단두대에서 맞은 죽음까지 아울렀다. 위페르가 펼친 첫 내한 공연으로,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이 연출했다.
공연은 30여 분간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독백으로 시작됐다. 반복적이고 시적인 대사는 번쩍이는 섬광, 극적인 음악 등과 어우러져 극장을 압도했다. 위페르는 경보음 울리듯 고성을 내다가 목이 졸린 듯 쉭쉭대고, 돌연 나직이 노래하듯 말하면서 우아한 군주와 무자비한 마녀, 비극적 어머니를 변화무쌍하게 오갔다. 총 86개 단락에 달하는 방대한 대사량을 따라가기 벅찰 때도 있었으나 쉼 없이 변주되는 말의 빠르기와 높낮이, 그에 더해진 각종 파열음이 메리의 삶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구체적 서사보다는 내면을 감각적으로 표하는 데 집중한 연출은 메리의 삶을 숭앙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입체적으로 관조하게끔 했다. 창백한 조명 이외 소품 하나 없는 무대 세트 역시 매력적이다. 넓지도 깊지도 않은 무대는 사방이 꽉 막힌 운명을 제시했고, “바위에서 스며 나온 물처럼 눈물을 쏟았다” 등 풍부한 묘사가 빈자리를 채웠다. 폭풍우 멎은 하늘빛의 조명 아래, 위페르가 양팔 벌려 유유히 움직이는 장면은 유독 잔상이 길다. “매가 날 수 없는 곳이라면 차라리 감옥이 낫다”는 대사가 활강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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