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비약적 진화: 100년 전 카메라와 현대의 고속 촬영 기술 비교[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9일 13시 00분


백년사진 No.86

머리에 흰 띠 등을 두른 4명의 학생들이 운동장 출발선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어딘가에서 단거리 육상 경기가 열린 모양입니다. 1924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설명을 보시겠습니다.

의기 충천의 용자
각 학교 대표선수 일백이십명
성황 중에 개막한 중등교 경기

연희 전문학교 주최와 보사 후원의 제 2회 중등학교 육상경기 대회는 예정대로 작일 오전부터 그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입동 추위를 하노라고 그 전날에 온 비로 말미암아 날은 좀 쌀쌀하였으나 피끓는 선수의 기세를 더욱 날카롭게 할 만 하였다. 은은한 송림이 우거진 사이에서 소슬한 송풍을 들으며 정각보다 약 한 시간이 늦어 아홉시 반부터 쇠같이 단련된 일백 이십여명이 유량한 경성악대의 주악에 보무 당당히 입장식을 거행한 후 즉시 회장 ‘백아덕’씨로부터 간단한 개회사가 있었다.
● 1920년대 카메라 기술

100년 전만 해도 사진은 소수만이 다룰 수 있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에서 사진찍는 사람들의 월급이 꽤 높았습니다. 1920년 창간 당시 월급 체계를 보면, 편집주간 120원, 국장 100원, 기자 80원~60원인데 사진반원은 100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당시에 나온 카메라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회사가 제공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는 요즘처럼 연속 촬영이 되지 않는 1초에 겨우겨우 1장 찍히는 카메라였습니다.

1920년대 동아일보 사진반원들의 취재 장비는 삼각대가 달린 영업용 암상 사진기 한 대와 ‘앙고’ 라고 불리던 휴대용 사진기 한 대였습니다.

앙고(Goerz Ango) 카메라
앙고(Goerz Ango) 카메라


필름이 보편화되기 이전 시대가 유리 원판을 사용했고 이 시기 사진기자들은 두루마기 속에 앙고 카메라를 숨긴 채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사진을 찍었고 그러다 발각이 되면 촬영되지 않은 유리 원판을 촬영된 유리 원판과 바꿔치기해서 내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동아일보 서영수 기자. 1958년생. 석사학위 논문 참고). 참고로 1920년대 동아일보 사진반원에는 경성일보 사진반 출신이었던 일본인 야마하나(1920년 입사), 역시 경성일보에서 스카우트된 사진제판기술자 한우식(1921년 입사), 그리고 당시 민간지를 두루 섭렵한 문치장(1923년 입사) 이렇게 3명이었습니다. 사진기자 이름이 신문에 제대로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래서 저 사진이 정확히 누가 찍은 사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기술의 발전과 기자들의 기동성 향상

세계사진사(까치 출판사, 2003년)의 기록에 따르면, “1923년에 베츨라 사에서 오스카 바르나크는 영화용 두루마리 필름을 적용시킨 사진기를 발명했습니다. 이것은 35밀리미터 폭의 필름 띠에 24X36밀리미터 크기의 이미지가 새겨지는 라이카 카메라입니다. 그것은 1924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혁신적인 카메라가 당시 한반도까지는 보급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위에 소개드린 사진은 이 세 사람 중 한명이 ‘앙고’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을 것입니다.

1923년에 독일 베츨라 사의 오스카 바르나크는 35mm 필름을 적용한 라이카 카메라를 개발했다. 이 카메라는 사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나, 당시 한반도에 보급되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주로 앙고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앙고 카메라는 삼각대를 이용해야 했으며, 야간 촬영 시에는 마그네슘 분말을 터트려 촬영해야 했다.

이후 1937년에는 섬광전구를 장착해 셔터와 동조되는 오토 프레스 카메라가 개발되면서, 사진기자들의 기동성은 점차 향상되었다. 굳이 카메라의 발전 순서를 도식화하면 앙고 카메라 → 스피드 그래픽 →35mm카메라→ DSLR → 미러리스 이렇게 되겠습니다.

● 현대의 고속 촬영 기술

지금의 고속 촬영 기술은 어느 정도일까요? 1초에 1장을 찍을 수 있었던 100년 전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트럼프 후보가 괴한의 총격을 받는 순간을 찍었던 AP 사진기자의 카메라 셔터 속도는 1/8000초였습니다. 1초를 8000개로 나눈 숫자입니다. 날아가는 총알도 그래서 사진으로 포착됩니다. 2024년 10월 현재 가장 빠르게 촬영할 수 있는 순간은 1/64000(현재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캐논 R3 미러리스 카메라 기준)

물론 그렇다고 1초에 8000장의 사진이 만들어 지지는 않습니다. 최대 1초 기준으로 30장의 사진이 찍힙니다. 그렇더라도 1초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진이 찍히는 것입니다.

100년 전, 카메라 한 대로 한 장의 스포츠 순간을 어렵게 어렵게 포착했던 사진기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기술의 발전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 봅니다. 다음 주에 다른 사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멋진 가을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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