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막을 올린 연극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를 맡은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피세두 씨는 “나 역시 영혜 같은 아픔이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편과 형부, 아버지 등 남성들의 폭력성에 상처를 입지만 기댈 곳 없어 홀로 외롭게 견디는 영혜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이 동명의 연극은 이날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했다. 지난달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이탈리아 극단 인덱스는 일찍이 원작에 매료돼 연극을 준비했다.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볼로냐를 시작으로 주요 도시에서 공연한 뒤 마침내 파리를 찾아왔다. 16일까지 예정된 파리 공연 전회가 매진될 정도로 프랑스인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1시간 50분간 이어진 연극엔 영혜와 남편, 언니와 형부 등 4명만 등장했지만 배우들은 긴 독백을 통해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생생히 표현해냈다. 영혜가 친정 가족들과 식사하다 아버지에게 고기를 먹으라는 강압에 시달리는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각 배우는 마치 관중석 쪽에서 가족 식사 장면을 보고 있는 듯 관중을 바라본 채 가족들의 행동을 묘사했다.
아버지가 영혜를 때렸다고 말하는 부분에선 각자가 동시에 자신의 뺨을 날카롭게 때려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연극 곳곳에서 소주, 한국어가 흘러나오는 TV, 무대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 등 한국적 요소들도 두드러졌다.
공연이 끝난 뒤 여러 관객들은 영혜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디아나 핀토 모이지 씨는 영혜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면서 “연극이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혜가 채식을 고집하며) 식물과 대화하려는 점은 매우 아시아적이며 ‘숭고한 융합’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먼저 완독했다는 도미니크 모이지 씨는 “무대의 빈 아파트, 회색 배경 등이 매우 외로운 인물들을 잘 나타냈다”며 “고독의 미학을 드러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높은 이해를 드러낸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릴리안 라하디 씨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는 단어와 멜로디 속에서 언어가 둥둥 뜨는 느낌을 받았다”며 “채식주의자는 그보다 더 몽환적이고 은유적이다”라고 했다.
일부 관객들은 원작의 문학성을 연극이 잘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파트리스 마쿠와 씨는 “원작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연극은 각색의 정도나 생동감 면에서 좀 부족한 듯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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