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는 주연이 쉬기를 기다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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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연-박정복, 대역배우로 등장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원작 비틀어 만든 작품 국내 첫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역의 대역 배우인 에스터와 밸이 분장실에서 인생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그렸다. 파크컴퍼니 제공
내 인생은 먼지를 뒤집어쓴 백스테이지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애면글면 살면서 ‘진짜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멋진 영웅 서사도 내 몫이 아닌 듯하다. 옆 사람에게 주어진 요행을 목도할 땐 울분과 허무감이 치민다. 우리는 대체 왜 요원한 꿈을 위해 현실에서 분투해야만 하는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미국 극작가 데이브 핸슨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전 회차 전석 매진된 배우 신구, 박근형 주연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제작한 파크컴퍼니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작품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에 오르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대역 배우의 모습을 그린다. 연출가 또는 브로드웨이 진출, 별 다섯 개짜리 리뷰이기도 한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이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깊이 있게 인생과 예술에 관한 질문과 씨름한다. 시시때때로 역정을 내는 ‘젊은 꼰대’ 에스터 역은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출연한 곽동연이, 어수룩하지만 열정적인 늦깎이 밸 역은 박정복이 맡았다.

묵직한 베케트 원작에 비해 쉽고 가뿐하게 볼 수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대화가 오가지만 “G.O.D.O.T(고도)에도 ‘신’이 있어” 등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분산했다. 작품의 메시지도 비교적 친절하게 전달한다. “살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다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 등 직관적 대사가 이해를 돕는다. 다만 공연 후반부에 메시지를 몰아치면서 연기 톤이 급작스레 진지해지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배우 이순재가 출연 중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작품이다. 그는 에스터 역을 연기하면서 “평생 배우를 하면서 기다림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늦더라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밝혔다. 두 대역 배우를 비춰줄 듯 비춰주지 않는 스포트라이트 뒤편, “인생의 기회는 운명의 장난처럼 갑자기 달려들지. 그러니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어”라는 에스터의 말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곽동연#박정복#연극#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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