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종점을 한 번 지나, 앞뒤로 나란히 걸린 ‘안녕히 가십시오 은평구입니다’와 ‘세계 속의 경기도’ 간판도 지나, 지금은 이름이 바뀐 전투경찰대 건너 일렬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까지 지나면 어김없이 그 육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왕복 4차로 위에 턱 하니 놓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지자체 홍보나 유아복 브랜드 광고 따위가 대문짝만한 글씨로 쓰여있긴 했지만, 그것은 광고판이라기엔 너무 두툼했고, 육교라기엔 아무것도 잇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비닐하우스촌에서 산으로 넘어가려고 횡단보도를 두고 저걸 기어오른단 말인가. 내게 그 거대한 벽은 우리 동네의 최대 미스터리였다.
물론 아빠는 답을 알았다. ‘대전차 방호벽’.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탱크가 서울로 들어오지 못하게 도로를 막기 위해서 무너뜨리는 벽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수기 위해 만들었다니? 어린 내겐 어려운 모순이었다. 다만, 희미하게 남은 인상은 있었다. ‘북한군이 온다면 아마 우리 집 앞을 지나가겠구나’라는 어떤 예감 같은 것.
그것이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옛 한양도성의 사대문처럼 웅장하지도 않은,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던 방호벽은 시계(市界)에서 자라는 내내 그저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을 뿐이다.
방호벽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늘 군인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한꺼번에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와있었다. 주말 아침이면 짧은 머리 전경들이 동네 목욕탕으로 삼삼오오 줄지어 걸어갔다.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깜박 잠들면 꼭 한 정거장을 지나쳐 “시계 입구, 가게 앞, 검문소입니다”라는 안내를 들으며 푸드득 깨어나곤 했다.
부대 앞은 이웃 동네 이름, 군인은 반 친구의 아버지, 검문소는 잘못 내린 버스 정류장. 최전선도 접경지도 아니었지만, 북쪽 경계의 아이들은 군 시설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몇 년 전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육중한 방호벽은 전부 사라지거나 ‘생태 다리’로 바뀌어 있었다. “37년간 단절된 고개를 이어 동물과 사람이 함께 이동할 수 있게 한다”라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그 방호벽이 37년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높다란 다리 위에 향토 수종을 심는다는 발상은 다소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21세기가 된 지가 몇 년째인데 아무렴.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21세기처럼 달라지진 않았다. 그 뒤로도 북한은 동으로 서로 해마다 미사일을 쏘아댔다.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 방호벽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저 북한이 쳐들어오더라도 저 벽을 허물어 시간을 벌 수준은 넘어선 것이었다.
시대가 참 달라졌다. 광화문 사무실에 앉아서 나는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줘야 할지 대놓고 고민하는 것을 본다. 시대가 너무 달라진 나머지, 기약 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중동에서도 북한이라는 이름은 총총 등장한다. 서로를 돕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은 이제 ‘악의 축’이 아니라 ‘저항의 축’이자 ‘대격변의 축’이라나.
지난달, 갓 100일을 넘긴 조카를 보러 용산 사촌오빠네를 갔다. 시대는 여러모로 달라져서, 오빠가 연말까지 육아 휴직을 쓰고 그때까진 새언니가 주 6일을 나가 일하기로 했다. 제멋대로 길어버린 머리칼이 땀에 젖어 가닥 진 오빠는 “독박육아의 맛을 봤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새 조금씩 사람 태를 갖추기 시작한 아기는 제법 다리에 힘을 뻗치며 걸어보겠다고 용을 쓰고 있었다.
네 명이 합심해 애 하나를 놀리고 먹이고 재우고서야 비로소 밥 같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창밖 멀리 미군 부대 부지가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소곤소곤 대화하다가, 오빠는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우리가 요새 무슨 얘기 하는지 알아? 이 집은 ‘모 아니면 도’야. 살면 끝까지 살 텐데 죽으면 제일 먼저 죽을 테니까.”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국방부, 국가 주요시설이 지척인 그 동네에서 오빠는 웃으면서 그런 소리를 했다. 북한이 쳐들어오면, 다시 전쟁이 나면, 수십 년간 습관처럼 해온 너무도 익숙한 가정(假定) 속에서 우리도 별 위기감 없이 “진짜 그렇겠네” 같은 소리를 하며 넘어갔다. 새근대는 갓난아기를 옆방에 두고 해선 안 되는 농담인 걸 알면서도,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 꽤 진담인 걸 알면서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달라지지 않았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