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첫 외국인’ 수설인 “음악 하길 잘했어요”

  • 뉴시스(신문)
  • 입력 2024년 11월 20일 08시 31분


말레이시아 출신 의료생명과학 전공생
첫 음악 대회 참가해 장려상…지난 6월부터 작곡 시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여주인공 이름 ‘이지안’으로 참가
“CJ문화재단, 제 미래 가능성에 많은 길 열어줘”

ⓒ뉴시스
이를 지(至)에 평안할 안(安).

말레이시아 출신 싱어송라이터 수설인(24·Soo Sir Yin)은 ‘평안함에 이르다’는 뜻을 지닌 이지안(李至安)이라는 이름으로 이달 9일 서울 관악아트홀에서 본선이 열린 ‘제35회 CJ와 함께하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지원했다. 그는 지난 35년간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지원자이자 본선 진출자다. 장려상까지 받았다.

약 10년 간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긴 그는 미발표 창작곡으로 경합하는 이 싱어송라이터 대회에 자작곡인 한국어 곡 ‘스위트 홈(Sweet Home)’을 들고 출전했다.

이지안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이지은)가 맡았던 배역 이름이다.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만든 ‘스위트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한국어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출신인 싱어송라이터 최유리 등 한국 음악을 공부하며 고(故) 유재하(1962~1987)를 알게 된 수설인은 한국어 노랫말이 좋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감성은 노랫말이 서정성의 근간이 되는 한국 포크의 맥(脈)에 닿아 있다.

정말 어려운 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지 않고 버티는 일이다.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하느라 대학 시절 공황 장애까지 겪은 그녀는 참고 또 참다가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뒤 음악을 만들고 대회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레 치유를 받았다.

혹시나 주변에 피해줄까 한국 친구에게도 대회 참가 날짜를 알리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언니 결혼식 이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상황이었다. 본선에 참여한 11팀의 중 객석 초대 손님이 없었던 유일한 참가자가 수설인이었다.

그런 그녀는 우연이 필연이라는 걸 알게 해준 기타를 친구 삼아 대회에 올랐다. 그렇다고 완전한 고립은 아니다. 참가자 이름을 일일이 하나 쓴 선물을 각자에게 조심스럽게 나눠주는 다정한 면모도 지녔다.

자칫 실수할까 한국어로 말할 때마다 지극히 조심한다는 수설인의 화법에 상대방은 속수무책이 된다. 그녀가 극도로 말을 아끼는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 말들을 홀연히 내뱉는 건 무책임하다는 걸 아는 그녀는 혼자 아파하고 걱정한 뒤 노래로 편지를 쓰며 그 열병을 발설한다. 이번에 그의 노래를 듣고 같이 앓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유재하의 예술성과 도전 정신을 기리며 신예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대회 취지에 공감해 2014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후원을 해온 CJ문화재단(이사장 이재현)은 첫 외국인 참가자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수설인은 이처럼 한국에서 도와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은 최근 CJ아지트 광흥창에서 수설인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한국이름 예명을 보고 느낌이 왔어요. 저도 사실 ‘나의 아저씨’를 너무 좋아해서요. 수많은 한국 드라마 캐릭터 중 이지안을 고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지원 시기 즈음에 마침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고 있었어요. 한국 이름이 필요했죠. 절대 안 뽑힐 줄 알고 그냥 장난처럼 제출했던 이름이에요.”

-왜 절대 안 뽑힐 거라고 생각했어요? ‘스위트 홈’ 노래가 너무 좋던데요.(드라마 ‘스위트 홈’ 중 괴물과 인간의 중간 존재인 신인류로 변한 ‘이은혁’을 마주한 여동생 ‘이은유’의 시점을 모티브로 삼아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과 성과 등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다.)

“한국 노래 처음 쓴 거예요. 지난 6월, 7월부터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한 곡을 썼고 나머지는 다 영어 노래였어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는 어떻게 지원을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최유리 씨 팬인데요. 영상을 계속 보는데 유리 씨가 자기 소개를 하면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대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셔서 검색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지원까지 하게 됐습니다.”

-유리 씨의 어떤 점이 좋아요.

“노래 그리고 가사가 되게 좋아요. 최근 유리 씨가 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콘서트에도 갔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어 예명인 이지안의 한자 풀이도 혹시 알아요? 드라마에도 나오는데요.

“제 음악이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길 원했기 때문에 이지안이라는 이름이 제 음악의 활동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수설인이라는 이름은 그럼 무슨 뜻이에요.

“시처럼 아름다운 소리요.”

-본명도 가수 하기에 좋은 이름인데요. 부모님이 가수를 할 거라고 예상하시고 지어주신 이름인가봐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거예요. ‘설’은 가족에게 물려받은 거예요.”

-그럼 6월에 작곡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음악을 하실 생각은 전혀 없으셨던 거예요?

“네 없었어요.”

-대학에선 의료생명과학을 공부했어요.

“친언니 따라서 선택한 전공이에요. 그런데 2학년 때 학교 공부가 저랑 너무 잘 안 맞아서 공황장애가 심하게 왔었어요. 3년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올해 초 졸업했죠. 조금 쉬다가 작곡을 배우게 된 거예요.”

-그럼 작곡이 일종의 치유가 된 거네요. 수많은 예술 창작 활동 중에서 왜 작곡을 하게 된 거예요?

“집에 기타가 있었어요. 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갔는데 기타를 두고 갔어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본선 때도 오늘 들고 온 기타도 그 기타예요. 기타 연주는 유튜브를 통해 독학했어요.”

-처음 쓴 곡의 제목은 뭐예요?

“곡 쓸 때 보통 제목을 안 정해요. 한 달에 한 곡씩 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6월에 쓴 곡은 그냥 ‘준(June·6월)’ 이렇게 제목을 붙였어요.”
-한국문화엔 어떻게 빠졌어요?

“네 살 많은 사촌 언니가 한국 문화를 좋아했었어요. 그 영향으로 제일 먼저 봤던 드라마가 ‘드림하이’였어요. 그 때가 2012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고등학교 때 특히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처음부터 최유리 씨의 노래처럼 조용한 노래를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는 ‘워너원’을 좋아했어요. 이후 한국음악을 이것저것 찾아 듣다가 유리 씨 음악을 알게 된 거예요. 특히 가사가 되게 좋았어요. 섬세했어요.”

-설인 씨 가사도 섬세했어요. 작사할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이었어요?

“‘스위트홈’은 친구 얘기인데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말을 거는 것처럼 썼어요. 그 친구가 되게 마음이 아픈데, 좋은 의도로 썼더라도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썼어요. 근데 그 친구는 한국어를 몰라서 제가 자기 얘기를 쓴 것도 몰라요. 그 친구에게 들려주기는 했어요. 연습을 하고 싶은데 들을 상대가 없어서 영상통화로 ‘3분만 빌려줘’ 하고 들려줬어요. ‘널 위해 쓴 거야’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죠.”

-최유리 씨 외 영향 받은 음악으로 제휘 ‘디어 문(Dear Moon)’, 최유리 ‘유영’, 신지훈 ‘시가 될 이야기’, 아이유 ‘조각집’ 등을 꼽았습니다. 이 분들 가사가 좋다고 했고요. 그럼 이번에 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유재하 씨는 어땠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스타일이에요. 전 음악을 배우지 않아서 장르는 잘 모르지만 미니멀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유재하 님의 가사는 어려웠어요. 사용한 단어, 감정의 맥락 둘 다요.”

-좋아하는 한국 배우가 있어요?

“정해인 씨 팬이에요. 해인 씨가 출연하신 드라마 ‘반의반’을 너무 좋아해요. 음악이 중요한 테마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본선 경연 대회는 어땠어요?

“제가 노래를 잘 못해서 구경하러 갔어요.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다 처음 만든 노래들이니까요. 다 노래가 좋았는데, 오예본 씨 노래가 특히 좋았어요. 제 스타일이었거든요. 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어요. CJ문화재단이 잘 챙겨주셨거든요.”

-이번이 한국 네 번째 방문인데 차분하게 한국어를 너무 잘해요. 한국어가 설인 씨에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한국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좋아요. 잠시만요. (스마트폰 메모장을 보며) 좋아하는 단어를 적어 놨어요. ‘온전히’ ‘조용히’ ‘겨우’ ‘여전히’ ‘잔뜩’ 이런 단어가 되게 좋아요. 한국어를 하면 차분해지는 느낌이에요. (한국어 발음이 너무 좋다고 하자) 경연대회 오르기 전 이렇게 주문을 외웠어요. ‘나는 이지안이다. 이지안이다’라고요.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계속 반복해서 들었어요.”

-다른 노래들도 누군가를 대상으로 만들었나요?

“제 얘기도 있는데 친구 얘기도 되게 많아요. 편지 쓰는 것처럼요. 실제로도 편지를 많이 써요. 한국 친구들한테도 만날 때마다 한국어로 편지를 써줘요. 한국 친구가 제 편지를 스마트폰 배경 화면에 넣기도 했어요.”

-그렇게 편지 쓰는 건 설인 씨 노래 만드는 방식과 비슷한 것 같네요. 프로 뮤지션의 길을 생각하고 있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음악을 막 배우기 시작한 단계잖아요. 당장 다른 일 할 생각은 없고 조금 시간을 갖고 음악 만드는 것을 하고 싶어요.”

-영미권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요.

“(영국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인) 브루노 메이저요. 기타 소리가 좋아서요.”

-설인 씨는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세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한국어, 홍콩 광둥어를 할 줄 알고요. 그 중 한국어를 제일 못해요. 지금은 독일어 배우고 있어요. (언어 배우는) 앱을 설치했는데 독일어가 가장 위에 있어서 배웠어요.”

-한국을 접하면서 더 좋아진 부분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다 되게 예쁘게 말해요. 또 한국 친구들이 되게 잘해줬어요.”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CJ 문화재단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요.

“제가 원래 집에서 혼자서 음악을 배우고 있는데, 어디가 맞고 어디가 틀리는지 전혀 몰랐었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지원 이후 뽑히고 나서 ‘내가 아주 잘 못하고 있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스스로 믿게끔 많이 도와 주셨죠. 평범하게 집에서 음악을 하던 제가 CJ 문화재단 지원을 통해 기념 공연도 하게 되고 음반 발매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 너무 기대가 됩니다! 나중에 제가 아티스트로서 한국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요. 그때도 CJ아지트 광흥창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정말 이 경연대회 참가한 것이 제 미래의 가능성에 많은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올해가 설인 씨한테 어떤 해로 남을 것 같아요.

“올해 초 졸업하고 좋았어요. 이후 혼자 유튜브 보고 공황장애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공부했어요. 특히 한국에 와 음악을 하면서 새로운 힐링도 얻었습니다.”

-만약 올해를 잘 보낸 설인 씨한테 스스로 편지를 써준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요?

“음악 하길 잘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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