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바닥에서 눈물 흘리는 여자는 성녀인가?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2일 10시 00분


카라바조 예술이 던진 질문,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카라바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1594-1595.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화려한 무늬가 그려졌지만 갈색 톤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옷을 입은 여인. 벽돌로 된 바닥 위 의자에 앉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습니다.

아래로 떨군 얼굴 위로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 옆으로는 조금 전 벗어 던진 듯한 장신구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나무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남겨진 건 옷과 장신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죠.


이 여인은 누구이고 그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맨바닥,
나무 의자 위
참회하는 성인
카라바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1594-1595.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카라바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1594-1595.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티치아노의 막달라 마리아가 신의 음성을 듣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드라마틱한 포즈를 짓고 있다면 카라바조의 막달라 마리아는 일상에서 좌절하는 누구나 그렇듯 고개를 숙이고 홀로 괴로움을 삼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초상화도, 정물화도 아닌 성경의 내용을 그린 종교화입니다. 그것도 카라바조가 처음으로 교황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종교화,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림 속 주인공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예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예술에서는 전통적으로 ‘죄 많은 여인’이나 ‘참회’의 상징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지금의 관점에서는 어색할 것이 없는 그림입니다. 가만히 앉아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인의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16세기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고, 어떤 이는 이 작품을 비난도 했습니다. 무엇이 신선했던 걸까? 

카라바조보다 약 30년 먼저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티치아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560년대.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이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성인’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는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옷이 아니라 종교화에서 신성한 사람들이 주로 입는 가운을 걸치고 있습니다.

또 그녀의 뒤로는 나무와 저 먼 들판, 그리고 하늘이 있는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또 펼쳐진 책 아래에는 해골이 놓여 메멘토 모리라는 상징까지 부여했습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으로 구성된 그림은 그녀가 일반인과는 다른 ‘성인’임을 다양한 장치를 통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티치아노의 막달라 마리아가 신의 음성을 듣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드라마틱한 포즈를 짓고 있다면 카라바조의 막달라 마리아는 일상에서 좌절하는 누구나 그렇듯 고개를 숙이고 홀로 괴로움을 삼키고 있습니다.

또 약간 화려하지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며. 그림 실력을 뽐내기 위해 곁들여졌지만,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걸림돌이었던 자연 풍경은 과감하게 삭제되었습니다.

여자의 옷에 칠해진 갈색 톤과 비슷한 벽과 바닥이 배경의 전부이고, 맨바닥에는 장신구와 막달라 마리아의 상징인 향유가 마치 소지품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던 당대 누군가는 이런 기록을 남길 정도였죠.

“(그림 속 여자가 성인이 아니라) 밤에 귀가해 혼자 방에서 머리를 말리는 옆집 여자아이 같다”

이렇게 누군가의 눈에는 ‘성인답지 않았’던 카라바조의 그림은 외면받았을까요? 글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림으로 보여준 신선함은 귀족과 교회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는 현실주의를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가 새로운 예술, ‘바로크’의 문을 열었습니다.

뻣뻣한 다리를 드러낸
마리아의 죽음
카라바조, 마리아의 죽음, 1601~1606.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마리아의 머리에는 성인임을 상징하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지만, 그 외 그림 속 광경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동그라미만 지우면 평범한 누군가의 죽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죠.

이 그림을 거절한 로마 산타 마리아 델레 교회의 입장은 ‘성인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신성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카라바조의 ‘마리아의 죽음’은 거절당한 뒤 버림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고 약 10년 뒤 카라바조가 교회에 걸기 위해 의뢰를 받고 그린 ‘성모 마리아의 죽음’입니다. 역시 지금 우리의 눈에는 성스러운 종교화이자 아주 잘 그린 그림으로 보입니다.

가로로 눕혀져 있는 마리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가리며 그 죽음을 슬퍼하는 성인들. 그리고 마리아의 붉은 옷과 호응을 이루며 장엄하게 천정에 드리워진 붉은 천과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두드러지는 조명까지. 바로크 걸작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역시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그림이었습니다. ‘호’를 느낀 사람은 이 그림에서 어떤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는지를 알아보았을 것이고, ‘불호’를 느낀 사람은 그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겠죠.

불호를 느낀 사람들의 감정은 역시 글로 남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의 모델을 창녀로 했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비판했고, 또 다른 사람은 ‘마리아의 발이 드러나 있어 옳지 못한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이 그림이 정말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분명한 건 마리아에 걸맞은 성스러운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불호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이지요.

이 그림을 전달받은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그림을 거절했고, 대신 이런 모양의 작품을 걸었습니다.

카를로 사라세니, ‘마리아의 죽음’.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델레 스칼라 소장
카를로 사라세니, ‘마리아의 죽음’.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델레 스칼라 소장
마리아는 죽었지만, 사람처럼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에 천사가 화관을 씌워 주고 있으며, 성인들은 당황한 듯 웅성이긴 하지만 절망에 잠기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카라바조의 마리아를 다시 볼까요. 마리아의 머리에는 성인임을 상징하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지만, 그 외 그림 속 광경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동그라미만 지우면 평범한 누군가의 죽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죠. 이 그림을 거절한 로마 산타 마리아 델레 교회의 입장은 ‘성인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신성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카라바조의 ‘마리아의 죽음’은 거절당한 뒤 버림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 밝은 루벤스,
“카라바조의 최상급 작품” 조언에
만투아 공작 소장품으로…
이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눈 밝은 사람은 바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약했던 화가 루벤스였습니다.

루벤스는 카라바조의 ‘마리아의 죽음’이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투아의 공작 빈센초 곤차가에게 “카라바조의 최고 작품 중 하나”라고 귀띔을 해주고, 곤차가는 이 작품을 매입합니다.

1607년 4월 1일부터 7일까지 곤차가는 이 작품을 전시하는데, 보고 따라 그리는 것을 철저히 금지 시켰다고 합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당시 인기가 너무 좋아 어떤 작품들은 주문이 밀려 같은 그림을 수십 점씩 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카피를 금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도 베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20년 뒤 곤차가의 컬렉션을 영국 찰스 1세 왕이 사들였고, 찰스 1세가 처형된 다음엔 프랑스의 컬렉터가 이 그림을 매입해 루이 14세에게 되팔았습니다. 그 후 줄곧 프랑스 왕실 컬렉션에 소장되었다가,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는, 불멸의 걸작이 되었죠.

카라바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1594-1595.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카라바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1594-1595.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카라바조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를 그린 그림과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두고 벌어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카라바조의 종교화는 날개도 후광도 없이. 일상 속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에 극적인 조명을 비추거나,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며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흔들림’의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누군가는 그 가치를 알아봤다면, 그것을 불안과 공포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지요.

뒷골목의 싸움, 부랑자, 살인자이자 현상수배범으로 빛과 그림자를 오갔던 카라바조의 삶. 그런 삶 속에 있었기에 어쩌면 그가 사람들이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에서 신성함을 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예술가들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얻어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재생산하며 ‘바로크’라는 움직임을 만들었던 것이죠.

카라바조의 굴곡진 삶 때문에 비록 글로는 그의 예술이 기록되지 못했지만, 20세기에 와서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이런 글이 포착하지 못해도 끝내 꺾지는 못했던 ‘마음의 역사’ 때문일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신성한 어딘가에?
아니면 규칙으로 만든 울타리 속 어딘가에?
어쩌면 우리의 바로 옆에 늘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수백 년 전 카라바조가 예술로 던진, 끝내 꺼지지 않고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 질문.
맨바닥 나무 의자 위 막달라 마리아를 보며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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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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