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받고, 치킨 더블로 가!”면 큰일…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면 안되는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3일 14시 00분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스트레스받아서 먹고, 우울해서 먹고, 짜증 나서 먹고…. 기분 나쁠 때마다 많은 양의 음식에 손이 간다면 습관성 폭식으로 인한 식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게티이미지
스트레스받아서 먹고, 우울해서 먹고, 짜증 나서 먹고…. 기분 나쁠 때마다 많은 양의 음식에 손이 간다면 습관성 폭식으로 인한 식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게티이미지


취업 준비생인 A 씨(23)는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다니려다 급하게 휴학을 결정했다. 당장 취업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그동안 쌓은 스펙도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취업 면접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오후 9시만 되면 허기가 몰려 왔다. 처음엔 스트레스 풀이로 매운 떡볶이를 주로 배달해 먹었다. 점점 성에 차지 않아 삼겹살, 치킨, 마라탕, 만두, 피자, 짜장면까지 배달 음식 수가 늘어갔다. 디저트 가게에서 10일 연속으로 티라미수를 배달 시킨적도 있다. 폭식이 습관이 돼버리자 어느새 10kg 가까이 쪘고, 친구들과 약속도 피하게 됐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우스갯말처럼 심리적으로 지쳐있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나는 때가 있다. 마음을 위로하는 특별한 음식을 뜻하는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기분 전환을 이유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폭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급격한 체중 증가로 신체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심리적 고립 문제로도 이어진다. 많이 먹는 자기 모습이 싫어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쉽다. 의지로 멈출 수 없는 폭식,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 얼마나 먹을지 자제 못 해

반복적 폭식으로 식이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 급식 및 섭식 장애(Feeding and Eating Disorders)의 하나인 폭식장애에 해당할 수 있다. 폭식장애는 폭식 습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얼마나 먹을지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보인다. 음식을 자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체중인 경우가 많다.

폭식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고, 집에 혼자 있을 때나 늦은 밤에 먹는 경향이 있다. 채널 A
단지 과식이 잦다고 해서 다 폭식장애는 아니다. 음식에 자제력을 잃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진단 기준이 있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음식을 빠른 속도로 먹어 치우고 △속이 불편할 때까지 많은 양을 먹거나 △많이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서 혼자 있을 때 먹고 △배고프지 않아도 먹거나 △먹고 나서는 심한 자책감 또는 자기혐오, 우울감에 빠지는 등 5가지 증상 중에 3개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1회,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폭식 장애로 진단한다.

그렇다고 폭식 장애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체중에 아예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극단적인 소식을 시도한다. 그렇게 꾹꾹 눌러 식욕을 참다가 어느 순간 배고픔을 못 이기고 자신도 모르게 폭주하고 만다. 그러면 또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굶어보려다 실패해서 또 폭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 단순 폭식보다 위험한 ‘먹토’

폭식 자체도 건강에 해롭지만, 살찌는 게 두려워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먹토’는 더욱 몸에 해롭다. 폭식장애 증상은 많이 먹는 데서 그치지만, 이보다 심각한 신경성 폭식증이나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환자들은 폭식으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음식을 토하거나 설사약, 관장약, 이뇨제 등 약물을 사용한다. 또 열량 소모를 위해 혹독한 운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두 질환 역시 급식 및 섭식 장애에 속한다.

신경성 폭식증은 폭식 후 죄책감을 덜기 위한 구토, 약물 복용 등 보상 행동이 뒤따른다는 데서 폭식장애와 차이가 있다. 체중 관리에 집착하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참다가 갑자기 폭주하는 경우가 많다.

거식증으로 더 많이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이미 저체중인데도 불구하고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거식증이라고 해서 음식을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다. 거식증 환자의 절반 정도가 이따금 폭식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마찬가지로 음식을 토하고 약을 먹어 억지로 배출하려고 애쓴다.

연예인 가운데 과거 신경성 폭식증 증상을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 경우가 꽤 있다. 가수 츄(위)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이혜성도 폭식증으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을 공개했다. 채널A, ‘세바시’ 유튜브 화면 캡처
폭식증과 거식증 환자 모두 체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자꾸 억지로 먹은 음식을 토하는 이유도 먹고나면 살찔까 봐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다가도 토하고 나면 불안감이 사라져서다. 잦은 구토는 식도 손상, 위 파열, 위산으로 인한 치아 손상 등 다양한 부작용을 부른다.

자신이 실제보다 뚱뚱하다고 믿는 거식증 환자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결론은‘몸’에서 찾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사랑받으려면 날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마른 연예인들을 추앙하며 다이어트를 ‘평생 숙제’처럼 여기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일에서 실패하면 자신이 뚱뚱한 탓이라고 돌린다. 실패의 원인을 바꾸기 어려운 능력, 성격 등에서 찾는 것보다 바꾸기 쉬운 몸에서 찾는 게 훨씬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 우울하고 화날 때, 폭식 경고등’

배고플 때만큼 폭식에 위험 신호가 켜지는 순간은 기분이 나쁠 때다. 우울하고, 화나고, 불안하고, 짜증 날 때 음식으로 도망치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어서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폭식 증상으로 치료받는 실험참가자 11명과 일반인 12명을 각각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우울한 음악을 들려주며, 최근 겪은 괴로운 일을 떠올리게 해서 일부러 침울한 기분을 유도했다. 그런 뒤 음식, 사람의 신체, 풍경이 나온 3종류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고, 이때 나타나는 심박수 변화와 기분 상태, 음식에 대한 갈망 수준을 검사했다.

폭식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아닌지 돌아보자. 게티이미지
폭식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아닌지 돌아보자. 게티이미지
그 결과 폭식 증상으로 치료받는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 전보다 우울한 기분을 느낀 후에 음식 사진을 볼 때 심박수가 줄어들었다. 심박수가 줄었다는 것은 뭔가에 강하게 집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음식에 대한 갈망 정도도 실험 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연구진은 “기분이 나빠지면 음식을 조절할 수 있는 인지 과정이 약화하고, 음식에 대한 갈망과 집중력은 높아진다”라고 분석했다. 이와 반대로 일반인들은 우울한 기분을 경험한 이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섭식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 중에 폭식 증상이 있는 140명을 조사해 봤더니, 만성 분노가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표현하지 않고 더 억압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노를 올바르게 해소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치우는 데 그 에너지가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식사를 할 때보다 폭식하기 직전에 더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 우울증 등 정서 문제 함께 다뤄야

그래서 폭식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식단 관리뿐 아니라 우울, 불안, 분노 등 정서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폭식 행동은 우울증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심리학과 연구팀은 폭식 습관이 있고, 우울증이 있는 14~23세 여성 145명을 모집했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만 우울증 완화를 위한 인지행동치료(CBT)를 실시했다. 인지행동치료는 부정적 정서와 부적응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왜곡된 인지 과정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우울증 치료에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인지행동치료를 위해 실험 참가자들을 10명 안팎의 그룹으로 짝지은 다음 서로 친해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을 낳는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그 생각들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쳐나가는 방법을 공유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치고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나는 완전한 실패자’라고 생각해 우울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이를 바꿔 ‘성적이 내 능력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또는 ‘이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등 좀 더 합리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식이다. 연구진은 이같은 치료를 총 4주 동안 진행했다.

그 결과 우울증을 치료받은 그룹은 치료받지 않은 대조 그룹보다 치료 직후 우울증은 물론 폭식 증상도 함께 개선됐다.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자, 폭식 충동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효과는 6개월 뒤 추적 조사에서는 효과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폭식 증상은 재발이 그만큼 쉽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음식 먹기 전 어떤 기분 상태였는지 기록하는 식단 일기를 쓰면 도움 된다. 게티이미지
음식 먹기 전 어떤 기분 상태였는지 기록하는 식단 일기를 쓰면 도움 된다. 게티이미지
그렇기 때문에 식사법 관리는 필수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식사로 배고픈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푸드 다이어트 등 지나치게 식단을 제한하는 것도 좋지 않다. 배고픔에 지친 상태가 되면 폭식 욕구가 올라왔을때 제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식단 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루 동안 먹은 식사와 간식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먹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당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를 기록한다. 기록을 통해 폭식과 연관된 정서적 패턴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완벽주의, 강박적 성향, 낮은 자존감, 대인관계 문제 등 폭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개인마다 다양할 수 있다. 개인적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먹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트레스#폭식#습관성 폭식#먹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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