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셰프 비키 쳉, 프랑스 요리-중국 요리 결합해 명성
미슐랭 1스타 식당 ‘베아’-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5위 ‘윙’ 운영
“먹는 사람-지역 맞춰 응용해야 참신한 요리 탄생”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 미국에서 자란 소년이 있다. 어머니가 일을 했기에 혼자 밥을 차려 먹어야 했던 소년은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그런 음식에 조금씩 질려가던 어느 날, 냉동식품을 직접 조리해 먹었다. 맛이 완전히 달랐다. 그 때부터 소년은 음식을 만드는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TV 요리 프로그램도 눈여겨봤다. 그리고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국 뉴욕의 유명 식당 ‘다니엘 블뤼’ 등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웠다.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2015년 식당 ‘베아(VEA)’를 열고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를 결합한 요리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낯설다는 반응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같은 요리를 수십 번씩 만들며 애쓴 끝에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그 바로 아래층에 2021년 식당 ‘윙(Wing)’을 열고 ‘경계 없는’ 형식의 중국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24절기에 맞춰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윙은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5위에 올랐다. 안성재 셰프가 극찬한 식당이기도 하다. 베아와 윙은 홍콩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유명 식당이 됐다. 셰프 비키 쳉(39)의 이야기다.
비키 쳉을 지난달 28일 홍콩에서 만났다.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두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식재료를 구입하고 사용할 때 시너지가 난다”며 웃었다. 그는 어떻게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를 결합하게 됐을까.
“요리는 먹는 사람과 그 지역이 중요합니다. 이에 맞춰 응용해야죠. 홍콩에서 프랑스 요리와 중식을 결합한 식당을 연 건 이를 즐길 사람들이 있고 그게 가능한 지역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중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서양인은 해삼을 낯설어하고 그 특유의 질감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서양인이 해삼을 즐기게 할까 고민하다 해삼을 스프링롤처럼 튀겼어요. 그랬더니 다들 맛있게 먹더라고요.”
윙에서 지난달 29일 해삼 스프링롤을 맛봤다. 해삼이 지닌 쫀득함과 롤의 바삭함이 흥미롭게 어우러졌다. 해삼 스프링롤은 윙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고 이를 만든 셰프가 누군지 안다면 최고일 것”이라며 웃었다.
윙의 음식은 기름지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와 소스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요리마다 모양이 정교하고 때론 화려해 작품 같았다. 머리카락을 땋은 것처럼 모양을 낸 훈제 가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인 중국 배추를 생강 소스에 조려 초록색 꽃이 활짝 핀 것처럼 담은 접시에는 젓가락을 대기 조심스러웠다. 칠리 소스를 얹은 굴과 계란, 알래스카 킹크랩은 신선하고 감칠맛이 났다. 시그니처 크리스피 치킨은 껍질이 바삭하면서도 베어 물면 육즙이 나와 고소했다. 생선 부레를 얹은 덮밥은 쫀득하면서 양념한 밥과 담백하게 어우러졌다. 요리 사이사이에는 우롱차, 자스민차 등 다양한 차를 제공해 요리를 하나씩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요리마다 잘 어울리는 와인도 각각 곁들여 풍미를 더했다.
이런 요리를 만들어내기까지, 그는 재료 1g의 차이에 따른 맛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연구했다. 그에게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한 요건을 물으니 가장 먼저 인내심을 꼽았다.
“요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혹독한 이 과정을 계속 견디는 힘이 필요하죠. 팀워크도 중요해요. 요리는 처음엔 혼자 시작하지만 손님이 음식을 맛보게 하려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해야 하니까요. 12시간 계속 일할 수 있는 체력은 기본이고요.”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를 결합한 그만의 요리를 만들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셰프로서 정체성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야죠. 요리에 대한 편견도 버려야 합니다. 보통 중식 요리사는 이탈리아 요리, 프랑스 요리를 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고정 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요리는 뭘까. 어떤 질문에도 곧바로 유창하게 답하던 그는 한동안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슈덮밥입니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린 시절 저희 집은 가난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기 어려웠어요. 제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어머니는 차슈덮밥을 사오셨습니다. 차슈덮밥은 진짜 맛있었고 그 순간 참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려고 더 노력했어요. 차슈덮밥은 제게 ‘행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가 셰프가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만 지지했을 뿐 다른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해도 셰프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어요. 최근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화려함에 이끌려 셰프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력을 갖춘 셰프가 되려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셰프가 있어야 할 곳은 무대가 아니라 주방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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