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을 꿈꾸며 바다로 나아가던 18세기 초. 해적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지내는 17살 루이스 앞에 아버지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해적 캡틴 잭이 나타난다. 루이스가 틈틈이 보던 아버지의 항해 일지에서 발견한 장미와 해골 표식 그림이 실은 보물섬 지도라고 한다. 루이스는 잭과 함께 보물섬을 찾아 나선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태어난 순간부터 외면 받아온 뛰어난 총잡이 앤, 패배를 모르는 검투사 메리가 합류한다. 긴 항해 끝에 보물섬을 찾아내지만 갑판장 하워드가 반란을 일으키고, 해적을 잡는 해적 헌터의 추격까지 받는데….
인생역전을 노리며 목숨을 건 해적들의 여정이 짜릿하게 펼쳐진다. 2019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제작사 콘텐츠플래닝이 작품을 보강해 2021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공연 중이다. 저마다 사연을 지닌 색깔 또렷한 캐릭터들은 활기를 불어넣는다. 갖가지 소동을 겪으며 차츰 우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도 몰입도를 높인다.
2인극으로 1인 2역에,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남성과 여성 역할을 모두 맡는 젠더프리 캐스팅 형식을 도입했다. 루이스와 앤 역은 박규원 최호승 임예진 임찬민이 맡았다. 잭과 메리는 주민진 랑연 김지온 정우연이 연기한다. 배우들은 탄탄한 기량으로 역동적인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가며 무대를 꽉 채운다.
임찬민은 잭이 항해에 데려가지 않으려하자 보물섬 지도를 외운 후 먹어치우는 당찬 루이스를 깜찍하게 연기한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받아온 모멸감을 세상에 돌려주겠다며 분노에 찬 앤도 서늘하게 소화한다. 랑연은 거칠어 보이지만 빈틈 많고 속정 깊은 잭, 냉철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메리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이들은 터질 듯한 고음도 시원하게 내지르며 열기를 뿜어낸다.
에너지 가득한 중독성 짙은 넘버, 해적선에 올라탄 듯 실감나는 무대 디자인도 매력을 더한다.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
5만∼7만 원.
뮤지컬 ‘클로버’, 고단한 현실에서 마주한 달콤한 유혹
할머니와 반지하방에서 사는 소년 정인.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틈틈이 폐지를 모아 팔지만 생활은 늘 쪼들린다. 제주로 가는 수학 여행비 35만 4260원을 마련하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어 포기한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오늘도 달린다. 일주일 간 휴가를 받아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온 악마 헬렐. 정인 앞에 나타난 헬렐은 정인의 집에 일주일 동안 머물게 해주면 대가를 주겠다고 말한다.
정인은 헬렐을 집에서 지내게 해 주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진 않는다. 하지만 햄버거 가게에서 억울하게 해고되고, 할머니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지자 정인은 잔인한 현실에 분노한다. 헬렐은 아름다운 바닷가, 신나는 놀이동산,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고급 요리가 가득한 세상들을 정인에게 하나하나 보여주며 선택만 하면 이를 가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클로버’(나혜림 지음)를 원작으로 만든 초연작이다.
헬렐 역은 고상호, 강찬, 임태현이 맡았다. 정인 역에는 김경록, 홍성원, 최민영이 발탁됐다.
유쾌하고 능청맞은 헬렐, 그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받아치는 정인은 웃음을 자아낸다. 헬렐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마음 속 어두움을 끌어내려 하지만 음산한 악마와는 거리다 멀다. 정인이 좋아하는 소녀에게 받은 클로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화분을 햇볕 드는 곳으로 옮겨준다.
고상호는 발랄하고 때론 엉뚱하지만 인간을 유혹하는 본분(?)에 충실하려는 헬렐을 매끄럽게 표현한다. 그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이 적지 않다. 최민영은 팍팍한 현실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정인을 단단하게 그려낸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절하기 힘든 제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내년 1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
5만5000∼6만6000원.
독자를 초대합니다
독자 20명(10쌍)에게 공연 관람 기회를 드립니다. 동아일보 골든걸 인스타그램 ‘동아일보 골든걸(@goldengirl_donga)’에서 응모해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