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만송이 튤립밭서 피어난 왕따-퀸카의 우정… “넌 한계가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8일 03시 00분


[선넘는 콘텐츠] 〈17〉 ‘위키드’ 영화-원작 소설 비교
상영시간 대부분 둘의 우정 조명… 앙숙서 절친 되는 과정 섬세히 그려
소설은 ‘악의 본질’ 탐구 돋보여… 주인공, 영웅 아닌 상처받은 인물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오른쪽)와 ‘엘파바’(신시아 이리보)가 착 달라붙어 있는 영화 ‘위키드’의 한 장면. 영화에서 예쁘고 인기 많은 퀸카인 글린다와 피부가 초록색인 탓에 친구가 없는 왕따인 엘파바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유니버셜픽처스 제공
“파퓰러! 넌 이제 곧 파퓰러∼.”

마법의 나라 오즈 북부 길리킨에 있는 시즈 대학. 예쁘고 인기 많은 퀸카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뛰어다닌다. 피부가 초록색인 탓에 친구가 없는 왕따 ‘엘파바’(신시아 이리보)를 꾸며주는 일에 신난 것.

원래 룸메이트인 글린다와 엘파바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은 뒤엔 ‘절친’이 된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머리를 매만져주고 화장하는 법도 알려준다. “모든 걸 바꾸면 앞으로 넌 인기가 많아질 것”이라고 치켜세운다.

20일 전 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오즈의 나라 마녀 글린다와 엘파바의 우정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기애 가득한 사교적 퀸카 글린다와 무뚝뚝하고 정의감에 찬 왕따 엘파바는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싫어했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영화는 2시간 40분의 상영시간 중 대부분을 둘의 대학 생활에 할애하며 이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두 사람의 우정은 영화 후반부 오즈의 독재자가 된 마법사에게 대항하기 위해 엘파바가 길을 떠날 때 최고조에 이른다. 글린다는 “넌 뭐든지 할 수 있다. 한계가 없다”고 응원한다.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사회적 편견에 시달렸던 엘파바를 ‘백인’ ‘금발’ 등 기득권과 주류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글린다가 품어주며 화해한다.

영화는 2005년 만들어진 뮤지컬 ‘위키드’를 충실히 복원했다. ‘라이온 킹’의 뒤를 이어 미국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단, 이번 작품은 뮤지컬 1막에 해당하는 내용까지만 다뤘고 속편이 예고된 상태다.

서사와 연출은 뮤지컬 흐름대로지만 영상미는 훨씬 화려하다. 먼치킨랜드의 형형색색 꽃밭을 보여주기 위해 900만 송이의 튤립을 직접 심었다.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화려한 기차는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 후반부 엘파바가 노래를 부르며 빗자루를 타고 활강하는 장면은 액션 영화라 불러도 손색없다. 영화는 개봉 첫 주 전 세계에서 1억6420만 달러(약 2294억 원)를 벌어들이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뮤지컬 ‘위키드’로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원작은 미국 소설가 그레고리 매과이어(70)가 1995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한 동명의 장편소설(사진)이다. 소설은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진다.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당으로 등장했던 ‘서쪽마녀’가 모함으로 인해 악(惡)으로 몰리게 되는 과정 등을 다루며 인간 심리를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소설은 엘파바가 태어난 뒤 부모에게 미움을 받은 과정을 자세히 그린다. 목사인 엘파바의 아버지는 액막이 의식을 준비하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엘파바의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어달라고 빈다. 아이를 고치기 위해 마법의 힘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자 “초록색 아이만으로 충분한 모욕”이라며 “마법은 부도덕한 자들이나 의지하는 도피처”라고 분노한다.

뮤지컬과 영화에서 엘파바는 ‘선한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소설에선 다르다. 엘파바는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분노하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에겐 친절하지 않다.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엘파바는 사랑을 주는 일에도 인색하다. 동물을 돕는 건 초록색 피부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처럼 취급받았던 과거 때문이고, 글린다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건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성녀도 악녀도 아닌 엘파바 덕에 인간을 선악으로 이분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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