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속 본드 카-악당 카… 60년 만에 만난 세기의 맞수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9일 03시 00분


애스턴 마틴 vs 롤스로이스
007시리즈 기틀 다진 ‘007 골드핑거’ 개봉 60주년 기념
‘본드 카’ 되살린 애스턴 마틴-‘악당 차’ 재현 롤스로이스
최신 모델에 영화 속 모델 상징 담아 팬에게 즐거움 선물

60대 한정 생산되는 애스턴 마틴 DB12 골드핑거 에디션과 오리지널 ‘본드 카’ DB5. 애스턴 마틴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내가 정보를 말할 것 같소?”

“아니요, 본드 씨. 당신은 죽을 거요!”

1964년에 개봉한 007 제임스 본드 영화 세 번째 시리즈인 ‘007 골드핑거’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레이저 무기로 살해 위협을 받는 중 악당인 오릭 골드핑거와 주고받는 대화다. 짧은 대화에서도 골드핑거의 악랄함과 단호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둘의 대립 관계는 팽팽했고 골드핑거는 본드를 가장 위험한 상황까지 몰고 가면서 역대 007 시리즈에 등장한 악당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악당 캐릭터뿐 아니라 영화 자체도 007 시리즈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된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고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버무린 블록버스터 성격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007 시리즈 전반을 관통하는 Q 부서의 비밀 무기와 본드 카가 등장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도와 전화는 물론 기관총과 방탄판 등 각종 방어 및 공격 무기가 숨겨진 애스턴 마틴 DB5 본드 카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구현한 재밋거리로 주목받았다. 그 덕분에 애스턴 마틴은 세계적 명성과 함께 본드 캐릭터와 어우러진 세련되고 품격 있는 이미지를 얻었다.

007 골드핑거에서 애스턴 마틴 DB5와 함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차는 악당 골드핑거가 타는 롤스로이스 팬텀 Ⅲ였다. 영화 속 골드핑거가 영국에서 금을 대량 밀반출하는 데 쓰이는 팬텀 Ⅲ는 골드핑거의 탐욕과 금에 대한 집착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극 중에서는 눈속임을 위해 금으로 만든 차체를 일반 차처럼 칠한 것으로 나오는데 금 때문에 무거워진 차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뼈대와 강력한 엔진을 얹었기 때문에 골드핑거의 선택을 받았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영화에 쓰인 차는 코치빌더 바커가 차체를 만든 1937년형 팬텀 Ⅲ 세단카 드 빌 모델로 촬영을 위해 영국 귀족에게서 빌렸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차체를 금으로 만들 수는 없어서 영화 제작 때는 금처럼 보이는 페인트와 표면 처리를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번호판에 쓰인 등록번호는 금의 원소기호인 ‘Au’와 숫자 1로 이뤄져 골드핑거의 차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본드 카 애스턴 마틴 DB5에 붙은 ‘BMT 216A’ 번호판과 함께 007 시리즈에 등장한 차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본드와 악당 골드핑거는 각각 애스턴 마틴 DB5와 롤스로이스 팬텀 Ⅲ를 타고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푸르카 패스의 풍경 속을 달리는 모습을 멋지게 연출했다. 그리고 두 차를 만든 애스턴 마틴과 롤스로이스는 올해 007 골드핑거 개봉 60주년을 기념해 최신 모델에 원래 모델들과 영화의 상징 요소들을 담은 특별한 차를 만들어 영화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DB12 골드핑거 에디션은 실내 주요 조절 장치를 금으로 도금하는 등 화려하게 치장했다. 애스턴 마틴 제공
먼저 애스턴 마틴은 DB12 골드핑거 에디션을 내놓았다. 애스턴 마틴의 상징적 라인업인 DB 시리즈의 최신작 DB12는 골드핑거 에디션에서 본드 카 DB5를 상징하는 차체 색인 실버 버치와 멀티 스포크 휠로 옛 차의 멋을 되살렸다. 실내도 고전적 분위기를 살린 쿠션과 세련된 패턴을 입힌 스포츠 가죽 시트를 달았고 기념 로고를 넣은 장식을 더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실내 부품들이다. 센터 콘솔에 있는 기어 선택 레버와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다이얼, 회전식 조절 장치가 모두 18K 금도금 처리됐고 탄소섬유 장식에도 금색 금속 섬유가 들어가 오묘한 빛을 낸다.

60주년 기념 모델임을 알리는 DB12 골드핑거 에디션의 특별한 장식. 애스턴 마틴 제공
60대 한정 생산되는 이 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2007년 빈티지 불랑제 매그넘 샴페인과 전용 잔 네 개, 영화 속 푸르카 패스의 DB5가 담긴 35㎜ 필름, 고급 키 프레젠테이션 상자와 실버 버치 색으로 칠한 스피드폼 모델 등이 담긴 특별 제작 케이스를 비롯한 선물도 주어진다. 독특한 꾸밈새의 차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구성은 애스턴 마틴의 개인화 및 맞춤 제작 전담 부서인 ‘Q 바이 애스턴 마틴’이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부서 이름 역시 007 영화 시리즈에서 유래한 것이다.

007 골드핑거의 악당 캐릭터가 탔던 롤스로이스 팬텀 Ⅲ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팬텀 익스텐디드 골드핑거. 롤스로이스 제공
롤스로이스도 007 골드핑거 영화 속 팬텀 Ⅲ에서 영감을 얻어 특별하게 꾸민 팬텀 익스텐디드 골드핑거를 공개했다. 영화 속 차처럼 단 한 대만이 제작된 팬텀 익스텐디드 골드핑거는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전담 부서가 원본의 특징과 영화 속 상징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 만들었다. 차체는 검은색과 노란색이 대조를 이루도록 칠했고 21인치 디스크 휠도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환희의 여신상은 은으로 만들고 18K 금을 입혔다.

007 골드핑거 60주년 기념 모델에 붙은 트레드 플레이트는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롤스로이스 제공
실내도 곳곳에 18K 및 24K 금을 활용한 세부 요소로 가득하다. 통풍구와 스피커 커버 등은 모두 금도금 처리했고 앞좌석 사이 콘솔에는 팬텀 스피드폼 모양으로 만든 18K 골드바를 넣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동반석 앞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팬텀 갤러리에는 푸르카 패스를 금박 처리한 등고선 지도를 수작업해 넣었고 시계 테두리는 007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총신 시퀀스’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팬텀 익스텐디드 골드핑거의 대시보드에는 오리지널 모델이 영화에 등장한 푸르카 패스의 등고선도가 새겨졌다. 롤스로이스 제공
천장 내장형 조명인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는 007 골드핑거 영화 제작진이 푸르카 패스에서 영화를 촬영한 1964년 7월 11일의 현지 별자리를 반영했고 뒷좌석 테이블에는 영화에서 골드핑거의 최종 목표인 포트 녹스 금괴 보관소 주변 지도를 금으로 만들어 넣는 등 치밀한 분석과 재현이 돋보인다. 영국에서 정식 발부된 AU1 번호판은 화룡점정으로 실제로 팬텀 익스텐디드 골드핑거를 구매한 사람은 이 번호판을 단 차에 타고 도로를 달릴 수 있다.

쉽게 잊히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007 시리즈는 엄청난 문화적 영향과 파급 효과를 낳을 만큼 특별한 영화였다. 소개한 두 가지 특별한 차의 면면은 007 시리즈에 관심 없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열성팬들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럽고 기념의 의미를 더 깊게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배려가 엿보인다.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고 럭셔리 브랜드 차들에서는 맞춤 제작을 통해 한층 더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음을 두 모델을 통해 알 수 있다.

#스타일매거진Q#스타일#애스턴마틴#롤스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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