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독해도 너보다 잘하겠다!”…큰소리치고 싶을 때 알아야 할 것들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30일 14시 00분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화가 나서 “내가 감독해도 저거보단 낫겠다!”고 큰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일부는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찐’ 전문가보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자. 게티이미지
스포츠 경기를 보다 화가 나서 “내가 감독해도 저거보단 낫겠다!”고 큰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일부는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찐’ 전문가보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자. 게티이미지

지난해 미국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타고 있던 비행기에서 “여러분, 현재 두 조종사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항공 교통 관제소의 도움을 받아 이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는 승객이 있습니까?”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직접 나서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을 것 같은지 묻는 조사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성인 2만63명이 답한 결과 이들 중 32%가 ‘자신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는 46%가 ‘자신 있다’고 답했다. 남성 절반 정도가 비행기 조종에 자신을 보인 것이다. CNN은 이를 보도하면서 착륙에 필요한 속도 유지, 관제 통신, 교통 규정 준수, 역 추진력 계산 등 복잡한 지식이 필요하기에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여객기를 성공적으로 착륙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응답자 상당수가 비행기 조종이 아닌 자동차 운전쯤으로 쉽게 생각한 걸까. 복잡한 비행기 조종에 대해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면, 그냥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무지로부터 오는 자신감은 우리 생활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안 드는 스포츠팀 감독을 향해 “내가 감독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고 외쳐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주식 초보자가 나름대로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해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으면서 자신이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는 어리석은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 뭘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에 대한 무지’

이런 현상은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의 영향을 받는다. 인지 편향은 여러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을 모아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단,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어림짐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고,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효과는 인지 편향 가운데 하나다. 데이비드 더닝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의 1999년 연구에서 이름을 따왔다. 특정 영역에서 지식, 기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 평가하는 능력도 부족하기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문법이나 맞춤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쓴 문장이 얼마나 틀렸는지 모른 채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남이 쓴 문장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실력도 부족하다. 게티이미지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실력도 부족하다. 게티이미지

더닝 교수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참가자 84명을 모집해 문법 시험을 보고, 점수순으로 상위·중상위·중하위·하위 4개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에게 실제 점수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이 몇 문제를 맞혔는지, 상위 몇 %에 해당할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하위 그룹은 실제 평균 점수가 하위 10%에 해당했지만, 상위 33%에 해당할 거라고 예측하며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반면, 상위 그룹의 평균 점수는 상위 11%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28% 정도에 수준일 거라고 더 낮게 예측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쉬웠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기 실력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 것이다.

●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연구진은 몇 주 뒤에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만 실험실로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살펴보고,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다시 예측해 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눈으로 확인하면, 상대적인 내 위치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하위 그룹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보고도 자기 예측 점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오히려 일부는 더 상향 조정했다. 문법 실력이 없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봐도 뭐가 틀렸고, 뭐가 맞았는지 구분할 수 없어서다. 반면, 상위 그룹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보고 자기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 점수와 비슷하게 자기 예측 점수를 상향 조정했다.

연구진은 비슷하게 설계한 또 다른 실험에서 자기 성적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에게 100달러(약 14만 원)를 주겠다고 상금을 걸어봤다. 돈을 걸면 내가 잘했다고 믿고 싶은 욕망이 조금은 줄어들고,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런데 돈과 관계없이 하위 그룹은 여전히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로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지식을 가지고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방송인 강호동은 여러 방송에서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우리는 지극히 작은 지식을 가지고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방송인 강호동은 여러 방송에서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더닝 교수와 저스틴 크루거는 이 논문을 발표한 후에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Ig Novel Prize)을 받았다. 이후에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25년간 이들의 논문을 인용한 횟수는 1만 회가 넘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결과가 과장됐을 수 있다는 반박 연구들도 나오면서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닝 크루거 효과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피식하며 누군가를 떠올릴 만한 단서를 제공해 줬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좁은 지식과 편향된 생각으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으니 말이다.

● 지적 겸손 부족하면 ‘셀프 과대평가’ 심해져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 부족할 때도 객관적인 자기 수준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지적 겸손은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하물며 알고 있는 것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지적 겸손함이 부족하면,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대평가하기 쉽다.

이고르 그로스먼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에 그동안 진행된 지적 겸손과 관련한 전 세계 연구를 분석한 결과를 게재했다. 해당 연구에서 지적 겸손을 위협하는 3가지 요소로 △자기 지식의 과대평가 △모르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 △편향된 정보 탐색을 꼽았다.

특히 막연하게 안다고 여기는 지식의 과대평가가 두드러진다.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진행한 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온실효과가 나타나는 이유 또는 헬리콥터가 공중에 떠오르는 원리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자, 상당수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하지만 직접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무지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막연한 자신감이 앞섰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비행기 조종 설문조사와 비슷하다.

●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는 메타인지 키워야

다행히도 지적 겸손을 기를 방법이 있다. 단지 지적 겸손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가 증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성인 140명을 모집해 절반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는 지적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기사를 읽도록 했다. 나머지 그룹에는 이와 반대로 자기 확신의 중요성에 관한 기사를 읽게 했다. 그런 다음 공간 추론 문제를 풀게 한 다음, 틀린 문제를 공부한 뒤 다시 도전할 의향을 물었다.

그러자 지적 겸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85%가 공부 후에 재도전하겠다고 답했다. 자기 확신에 관한 기사를 읽은 이들의 64%만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단지 문제 풀기 직전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에 따라 틀린 문제를 다시 배우려는 태도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

지적 겸손 자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려는 메타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란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지 능력이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능력이 생기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되면,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지적인 측면에서 메타인지가 낮다는 것이 지능이 낮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특정 영역에서의 지식이나 기술,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 즉, 누구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착각하며 실수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기르면 어떨까. 특히 누군가의 실력을 함부로 비난하기 전에 더닝 크루거 효과와 지적 겸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최고야의 심심토크#심심토크#무지#더닝 크루거#Dunning-Kruger#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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