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 출신 고교생 다이(大)에게 ‘재즈’는 심장을 펄펄 끓어오르게 만드는 100℃의 온도 같다. 다이에겐 이름에 걸맞은 큰 꿈이 있다. 세계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밤마다 아무도 없는 강가에 나가 홀로 색소폰을 연마하던 소년은 일본 최고의 재즈 클럽 무대에 오르기 위해 무작정 도쿄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래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와 초보 드러머 ‘슌지’를 만난다. 자기 자신보다 재즈를 더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돈 한 푼 없다는 거다. 그리하여 연습실 빌릴 돈은 한 푼도 없지만, 포부는 세계 최고에 버금가는 10대 재즈 밴드 ‘JASS’가 탄생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는 저 녀석들의 무모한 여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생의 박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제 몸집보다 더 큰 꿈을 꾸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자라 그 꿈을 제 것으로 만들 땐 짜릿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돈 한 푼 없는 녀석들을 품어주고, 무대에 오를 기회를 주고, 계속 나아가라며 용기를 건넨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쿄에서 작은 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한 할아버지는 녀석들의 1호 팬이다. 영화에서 그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그는 아마도 새벽부터 가게를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어른일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최소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이어오면서도 그가 자기 삶을 위해서 놓지 않은 한 가지, 바로 재즈다. 일을 마친 뒤 라이브 재즈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를 바라보며 칵테일 한 잔을 즐긴다. 무아지경 연주하는 초짜 밴드들의 실수를 모른 척 눈감아주고, 그들의 다음 무대를 일부러 찾아가 지켜본다.
그의 눈에 비친 슌지는 실수투성이였을 거다. 이미 프로급인 두 친구와 달리 슌지는 드럼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초급자다. 손가락 마디마다 파스를 붙여가며 연습해도 실력 차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도 좋아서 시작한 일. 슌지는 크고 작은 실수들을 숨기기보다 “오늘 나 몇 번이나 틀렸지?”라고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정면 돌파해왔다. 혹여 화려한 색소폰과 피아노 선율에 폐가 될까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연주를 마친 슌지에게 어느 날 두부 가게 노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자네의 드럼은 좋아지고 있어. 나는 성장하는 자네의 드럼을 보러 온다네.”
슌지의 심장을 관통한 이 한마디 덕분에 그는 계속 나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때로는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잘 해내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이제 더는 라이브 무대를 열지 않는 낡은 재즈 바 ‘TAKE TWO’를 운영하는 아키코 사장은 어떤가. 그녀는 한때 일본 최고 밴드만이 설 수 있다는 클럽 무대에 오른 재즈 밴드의 일원이었다. 열정으로 끓었던 100℃의 시절을 지나 지금 그녀에게는 도쿄 변두리에 자그마한 재즈 바를 운영할 정도의 온기만이 남아 있다.
차곡차곡 모아온 재즈 음반을 단골과 함께 듣는 낙으로 살아가던 그녀 가게에 저 녀석들이 들어섰을 때, 그녀는 선뜻 자신의 재즈 바를 연습실로 내어준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세계 최고의 밴드로 성장하는 녀석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어쩌면 저 녀석들의 뜨거운 성취는 두 어른이 삶 속에서 지켜낸 온기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재즈 공연만은 놓지 않은 두부 가게 할아버지와 큰 꿈을 이뤄낸 뒤에도 은근한 온도로 재즈를 사랑해 온 아키코 사장처럼.
열정이 언제나 100℃로 끓을 순 없고, 삶의 의지가 모두 사라져 심장이 얼어붙는 순간도 생기기 마련이기에, ‘그럼에도 사랑하는 무언가’를 끈덕지게 지켜내는 보온이 중요한 것이다. 끓는 점에 도달하는 일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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