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경북 경주 시내 관광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경주 최 부잣집은 17세기 초부터 약 400년에 걸쳐 부를 유지했다.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부를 수백 년 동안 누릴 수 있었던 건 물질만 추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부잣집 가훈 중 하나는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였다. 과도한 부의 축적이 도리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계한 것. 후손들은 가산의 일부를 빈민 구휼 등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이 책은 한국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 부자 23명이 어떤 원칙을 갖고 부를 축적하고, 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정리한 역사 교양서다. 일반적으로 성리학 질서가 지배한 조선에서는 부의 축적을 사회적으로 터부시했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에서 부의 축적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한 공자의 말처럼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는 건 권장됐다는 얘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 부잣집, 수년 동안 이윤도 나지 않는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인 윤선도, 허생전의 모델로 청과 일본을 오가는 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역관 출신 변승업 가문 등. 조선 부자들은 아낌없는 기부와 적선,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집요함 등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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