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품다가 독 뿜는 거미처럼 이중적 매력 지닌 공예작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일 03시 00분


‘아라크네 아이’展 구혜원 회장
작품 놓는 좌대 재활용하고
큐레이터서 도슨트까지 직접 해
“전시기획 ‘찐사랑’이라 가능하죠”

‘아라크네 아이’전을 기획한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이 참여 작가들과 최성임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 왼쪽부터 지영지 작가, 구 회장, 원재선, 오주연 작가.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첫눈이 내린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미술관에서 한 여인이 분주히 작품을 설명했다. ‘도슨트’ 일을 마치자 여인은 전시장 밖 테이블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올해로 7번째 공예 전시기획에 직접 나선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이다.

이날 개막한 ‘아라크네 아이’전은 그리스 신화에서 뛰어난 바느질 실력으로 신에게 도전하다 거미로 변해버린 여인 ‘아라크네’가 주제다. 목장갑이나 가느다란 말총으로 만든 브로치부터 재활용 포일로 만든 드레스, 거미 다리를 형상화한 목도리 등이 눈길을 끈다. 전시는 금기숙 김지민 오주연 백재원 윤순란 최성임 등 작가 25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 주제부터 참여 작가 선정까지 직접 한 구 회장은 “따스하게 알을 품다가도 치명적인 독을 뿜는 거미처럼 이중적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이 본업인 구 회장이 여는 공예 전시는 첫눈엔 ‘우아한 취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장 면면을 보면 수십 년째 이면지를 잘라 메모장으로 쓰는 구 회장의 ‘짠순이’ 기질과 원칙주의가 배어났다. 작품을 놓는 좌대는 재활용하고, 큐레이터부터 도슨트 역할까지 구 회장이 직접 한다. 구 회장은 “비즈니스인에게 전시 기획은 수지가 안 맞는 일이지만 ‘찐사랑’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9년 아트 주얼리를 처음 접하고 대학 졸업전까지 찾아다니며 ‘덕후’가 됐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도 학부 전시에서 발굴한 20대 작가부터, 아트숍에 있던 작품을 우연히 보고 출산 후 경력 단절 상태에 있다 다시 작업실로 나오게 만든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전시 준비를 위해 작가를 만나는 것 외엔 사적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외부 영향 없이 실력 있는 작가가 기회를 얻는 장을 만들자는 생각이에요. 그 ‘순수한 즐거움’을 깨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직접 노력하는 이유가 ‘찐사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그의 답이다. “전시를 위해 작가와 대화하며 작품의 변화를 보고, 그 결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까지 생기니 희열을 느낍니다. 자식 키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죠.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엄청난 보람이 있어요.”

많은 것의 기준을 돈으로 생각하는 시대. 구 회장은 “비용을 써서 화려하게 연출한 전시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결국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자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절제하며 만든 전시는 제한된 상황에서 창의성을 끌어모아 ‘나만의 것’을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전시장 속 작품들도 각자 지닌 개성의 힘을 믿고 서로 얽히고설켜 유연하지만 단단한 거미줄을 만들고 있다. 전시는 12일까지.

#아라크네 아이#구혜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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