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소소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일 12시 08분



법이 상식을 앞설 때가 있다. 올봄 강원 고성을 여행할 때였다. 숙소가 해수욕장에 맞닿아있어 머리맡 발코니 창문을 열면 밤바다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었다. 하루는 기분 좋게 잠을 청하려는데 난데없이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커튼을 젖혀보니 젊은 남녀 넷이 해변에서 불꽃을 터트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고, 해수욕장 쪽으로 발코니가 나 있는 숙소들이 많았기에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남녀들의 대화 소리가 잘 들렸다. 일행 중 한 명이 지금, 여기서 불꽃을 터트려도 괜찮은지 물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당당하게 답했다. “괜찮아, 폐장 기간에는 불법 아니야.”

남자의 허세도 일리 있었다. 일단 10년 전 제정된 해수욕장법에 따르면 백사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행위는 불법이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개정된 법이 2019년 시행되면서 해수욕장이 폐장하거나 개장하기 전에는 입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폐장된 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이 아니고, 그러니 불꽃놀이를 해도 문제가 없지 않으냐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밤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다분한 상식을 법으로 덮으려는 시도로 들렸다.

법은 늘어나고 있다. 법제처에 따르면 현행 법령과 자치 법규를 합치면 15만 건이 넘는다. 20년 전에는 6만여 건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법대로 해’를 외치는 사람들도 는 것 같다. 법대로 하면 괜히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다. 법대로만 하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법 만능주의다.

법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인간사의 모든 영역을 규정할 순 없고, 법이 없는 곳에서 구성원들은 상식이란 걸 만들고 따라왔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선 뛰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하는 것들 말이다. 이것을 깨는 것을 민폐라고 불렀고 부끄러워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법이 아닌 민폐는 당당해진다. 러닝 크루가 말썽이자 한 자치구가 종합운동장에서 5명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시켰다고 한다. 법 만능주의의 시각에서는 4명이 달리는 건 괜찮다. 정말 그런 걸까.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매너는 오히려 감동을 준다. 젖은 우산을 굳이 버스의 빈 옆자리에 걸어두지 않아 젖어버린 한 승객의 바지. 그런 것들이 감동적이다. 원래 비매너가 판치는 경기일수록 스포츠맨십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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