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시리즈
얼굴과 배, 다리만 빼고 온 몸이 까만 고양이 깜냥.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는 길고양이 깜냥은 하룻밤 재워 달라거나 먹을 걸 달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리고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 아파트, 태권도장, 편의점, 캠핑장 등에서 펼치는 깜냥의 활약은 기발하다.
맹랑하고 까칠한 듯하지만 은근히 속정 깊은 깜냥을 그린 창작 동화 ‘고양이 해결사 깜냥’(창비)은 2020년 1권이 출간된 후 올해 9월 7권이 나왔다. 시리즈 누적 판매량은 80만 권이 넘는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학습 만화가 강세인 어린이책 분야에서 창작 동화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지난해 10월, 6권이 출간될 날 교보문고에선 일시 품절되기도 했다. 중국 대만 러시아에 수출됐고 동명의 뮤지컬도 만들어졌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을 쓴 홍민정 작가, 담당 편집자인 김솔 창비 어린이출판부 편집자를 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홍 작가는 방송 작가, 학습지 편집자로 일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동화작가가 됐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제24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을 받으며 독자와 만나게 됐다.
“원고를 쓸 때는 당선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당선 소식을 듣고는 책으로 나오면 일정 규모의 독자들이 읽어주시면 고맙겠다고 생각했고요. 시리즈가 된 것을 비롯해 해외 수출, 뮤지컬 제작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랍고 신기해요.”(홍 작가)
홍 작가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길고양이가 주민들을 지켜주는 경비원이라고 상상한 것. 처음 이야기를 구상한 건 2013년이었다. 오래 간직하다 2019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집필했다. 깜냥이가 비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실을 찾았다가 주민들을 돕는 이야기다. 엄마가 늦게 퇴근해 단 둘이 있는 형제의 집으로 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댄스 동아리 오디션을 준비하느라 쿵쿵거리며 층간 소음을 내는 아이의 집에서는 조용하게 춤추는 법을 알려준다. 공모전에 낸 제목은 ‘고양이 경비원 깜냥’이었다.
“길고양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잖아요. 처음에는 깜냥이 ‘너무 추우니 경비실에 머물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등 가여운 캐릭터로 그렸어요. 한데 글이 잘 안 써지더라고요. 깜냥을 당차고 밝은 성격으로 바꾸니까 이야기가 쭉쭉 이어졌어요.”
창비는 원고를 보고 시리즈를 기획했다. 제안을 받은 홍 작가는 “이 작품이 시리즈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김 편집자는 “당시 편집부에서 깜냥의 캐릭터가 뚜렷하고 흥미로워 시리즈로 확장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시리즈 계획을 세우고 1권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1: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를 만들었고 깜냥 인형탈도 제작했다. 깜냥을 알리기 위해 노래와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재희 작가가 귀엽고 생동감 있게 그린 그림도 매력을 더한다.
책은 나오자마자 사랑받았다.(기자도 1권을 읽고 재미있어서 이후 책이 나올 때마다 챙겨봤다.) 각 도서관에서 이 시리즈는 어린이책 대출 순위 10위 안에 든다. ‘항상 대출 중인 책’으로도 유명하다. 창비는 깜냥 키링을 비롯해 다양한 굿즈를 만들고 팝업스토어도 열고 있다. 홍 작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홍 작가는 강아지를 키운다. 2015년 유기견 보호소에서 ‘행복이’를 입양했다.(홍 작가는 동화 ‘낭만 강아지 봉봉’ 시리즈도 쓰고 있다.) 그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다른 동물에게도 마음이 열렸다”고 했다.
홍 작가는 ‘깜냥’이라는 이름을 먼저 짓고 캐릭터를 고민했다. 까만 고양이라는 뜻과 함께 ‘스스로 일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순우리말의 의미도 담았다. 깜냥은 이름처럼 할 수 있는 일을 척척 한다. 눈썰매장에서는 얼음 조각상이 깨지자 이를 재치 있게 수습한다. 캠핑장에서는 휠체어를 탄 아주머니가 남편이 회사일로 자리를 비워 혼자 요리 대회에 나가기 어렵게 되자 깜냥이 함께 대회에 출전해 쉬우면서도 독특한 요리를 만든다.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제 일어날 법한데다가 해결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고 신선해 공감을 자아낸다. 나쁜 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홍 작가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 없어도 살다 보면 문제 상황은 벌어진다”며 “깜냥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할 지 글을 쓸 때 많이 고민한다”고 했다.
깜냥은 “원래 ~~~안 하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할 건 다 한다. 이 표현은 깜냥의 ‘시그니처 워딩’이 됐다. 이 말은 홍 작가가 쓴 작품 개요에서 비롯됐다. ‘깜냥이 경비실에서 잘 수 있는지 물어본다(원래 아무데서나 안 자는데), 먹어도 되는지 물어본다(원래 아무거나 안 먹는데)’라고 썼던 것.
“원하는 게 있는데 얄밉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얻어내는 깜냥의 모습은 실은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해요. 먹고 싶은데 안 먹고 싶은 척 하면서 달라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다만 이 표현을 너무 자주하면 안 되니까 횟수를 조절해요. 적절한 양만 딱 들어가게. 향신료처럼요.(웃음)” 아파트처럼 친숙한 장소는 바로 글을 쓸 수 있었지만 편의점, 캠핑장 등은 취재했다.
“단골 편의점에서 점주님을 인터뷰했어요. 물품 발주서도 보여주며 편의점 운영 방식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죠. 캠핑장도 가족과 함께 다녀왔어요. 캠핑 영상을 찾아보며 반려 동물이 갈 수 있는 캠핑장도 확인했죠.”
깜냥이 가는 장소는 홍 작가와 편집자가 상의한다. 물론 결정은 홍 작가의 몫이다. 편의점이 배경인 5권부터는 조심스럽고 겁 많은 길고양이 하품이가 등장한다. 깜냥과 달리 하품이는 실제 길고양이의 특성을 지녔다.
“하품이가 깜냥과 성격이 상반돼야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거든요. 사람을 두려워하는 하품이에게 깜냥이 손을 내밀어서 조금씩 세상으로 나오게 해요. 제 성격은 하품이와 비슷해요. 깜냥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도 곧장 해보는데요, 저는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문장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대화체로 쓴다. 홍 작가는 글을 다 쓴 후 직접 소리 내어 수차례 읽으며 수정을 거듭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동화는 대화체를 많이 씁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깜냥의 움직임을 드러내기에도 대화체가 좋고요. ‘했어’, ‘했지’도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요. 책 한 권이 원고지 100장 정도 분량인데요, 같은 표현이 반복되지 않도록 목이 아플 정도로 여러 번 읽어요. 그러면 눈으로는 안 보이던 게 과속 방지턱처럼 탁 걸리는 부분이 나타나요.”
시리즈는 권선징악이나 특정한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깜냥의 활약을 따라가다 보면 나누고 베푸는 것의 의미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문제가 되는 상황은 서로 조금만 배려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면 풀리는 게 많아요. 깜냥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니까 문제가 해결되는 거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해결사가 돼 줄 수 있답니다.”
책에는 ‘되뚱되뚱’, ‘쭐레쭐레’처럼 리듬감 있는 단어가 많다. 이를 찾기 위해 홍 작가는 사전을 곁에 두고 수시로 살펴본다. 평소 어린이들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보고 작품에 반영한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초청하고 싶어 하는 인기 강연자로, 어린이와 만나는 일이 많다.
“학교에서 ‘희망 급식 메뉴’를 적는 칠판을 보며 아이들이 급식 메뉴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게 됐어요. 아이들이 하는 말 중 인상적인 건 메모하고요.”
시리즈에는 경비원, 태권도 사범, 편의점 사장, 캠핌장 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여성 태권도 사범, 휠체어를 탄 아주머니도 나온다. 홍 작가는 어린이들이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직업, 장애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도록 더 신경 쓴다고 했다.
“내년 여름에 8권이 나올 예정이에요. 깜냥이 가는 장소는 비밀이랍니다.(웃음) 시리즈를 언제까지 쓸진 모르겠지만 마지막 책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깜냥이 깜냥다움을 잃지 않게 하고 싶어요. 어린이들이 나중에 커서 잠깐씩 깜냥을 떠올리며 재미있었고 위안을 얻었다고 여기면 좋겠어요.”
■‘고양이 해결사 깜냥’(창비) 시리즈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는 길고양이 깜냥이 아파트, 편의점, 캠핑장 등 일상 속 공간에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린 창작 동화다. 깜냥은 이름처럼 얼굴과 배, 다리만 빼고 온 몸이 까맣다. ‘스스로 일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순우리말의 의미도 있다. 깜냥은 원하는 걸 씩씩하게 요구하고, 도움을 받으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갚는다. 2020년 1권이 출간됐고 올해 9월 7권이 나왔다.
1권에서 깜냥은 아파트 경비실에 머문다. 그러다 댄스 동아리 오디션 준비를 하느라 쿵쾅거리며 층간 소음을 내는 아이에게 조용하게 춤추는 법을 가르쳐 준다. 피자 가게(2권)에서는 피자를 꺼리는 할아버지를 위해 느끼하지 않은 ‘쪽파 피자’를 만들고, 태권도장(3권)에서는 태권도를 좋아하지만 태권도장을 더 다닐 수 없게 된 나은이를 담은 영상을 제작한다. 이를 본 부모님은 나은이가 태권도를 계속하게 해준다. 5권부터는 겁 많은 길고양이 하품이와 함께 한다. 캠핑장(7권)에서는 휠체어를 탄 아주머니와 함께 요리 대회에 나간다. 각 상황은 실제 있을 법한데다 깜냥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워 공감을 자아낸다.
깜냥은 까칠하면서도 정이 많고 새침하면서도 자상하다. 고마움의 의미로 선물을 건네면 사양하지 않고 받아 유용하게 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일을 하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 과정에서 종종 작은 말썽도 일으키지만 요령 있게 수습한다. 깜냥이 도움을 받고 베풀며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나누고 배려하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만든다. 깜냥이 다음에는 어떤 곳을 찾아 활약할지 궁금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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