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영화감독 야코 판도르마얼
무용-연극-영화 합친 ‘콜드 블러드’… 13, 14일 성남아트센터서 국내 초연
미니어처 세계를 실시간 영상화
“부드럽고 다정한 유지태 목소리, 풍자적 작품 내용과 반전… 적격”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와 그 이전의 삶이 갖던 의미를 송두리째 앗아가요. 터무니없고, 익살스럽고, 때로는 사소하기까지 합니다. 인생의 블랙코미디죠.”
이달 13, 14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내 초연되는 ‘콜드 블러드’를 연출한 야코 판도르마얼의 말이다. 1991년 장편 데뷔작 ‘토토의 천국’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 상’을 거머쥔 이후 ‘미스터 노바디’ 등 대표작을 남긴 그는 아내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 드 메이와 함께 공연단체 ‘키스 앤드 크라이 콜렉티브’를 이끄는 공연 연출가이기도 하다. 2014년 열린 ‘키스 앤드 크라이’ 이후 10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를 만났다.
작품은 일곱 가지 무작위 죽음을 ‘손가락 춤’과 실시간 영상, 내레이션으로 펼쳐낸다. 영화 촬영장을 연상케 하는 미니어처 세트 곁에 선 두 명의 무용수. 이들은 모리스 라벨, 데이비드 보위 등의 음악에 맞춰 검지와 중지만으로 춤을 추고, 이는 실시간 녹화 및 송출을 통해 영화화된다. 손가락 춤을 안무한 건 45년 경력의 무용가인 드 메이. 벨기에의 전설적인 현대무용 단체 ‘로사스 무용단’의 창립 멤버다.
“아내와 주방 식탁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 손가락 춤이 탄생했어요. 손가락은 거울 없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옷가지를 걸치지 않는 특별한 신체 기관이죠. 또 형태를 바꾸어 사람, 동물 등 다채로운 모양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스크린보다 무대가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의 공연에서는 더 큰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구름은 어항 속 우유로, 태양은 손전등으로 표현된다. 미니어처 방에서는 가구가 천장에 붙어 회전하는 장면까지 가뿐히 보여줄 수 있다. 판도르마얼은 “대형 세트장이나 최첨단 컴퓨터그래픽(CG)이 없어도 손수 만든 소품과 종이 상자만 있으면 된다”며 “이러한 작업 방식은 반대로 영화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 최신작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미니어처를 사용해 다양한 시각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실시간 영화는 무대 상단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된다. 관객이 무대 위 움직임과 스크린 속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 판도르마얼은 이를 ‘일회성(´eph´em`ere) 영화’라고 불렀다. “유일한 기록장치는 현장 관객의 기억뿐, 나머지는 사라질 운명”이라는 이유에서다. 기발한 연출은 그가 20, 30대 시절 아동극과 서커스에 참여한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어린이 관객은 비교적 솔직하게 감상을 표현합니다. 30분쯤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공연에 문제가 있는 거죠. 이 경험은 제게 리듬감과 단순함의 중요성을 가르쳐 줬습니다.”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레이션은 영화 ‘올드보이’, ‘봄날은 간다’ 등에 출연한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2014년 ‘키스 앤드 크라이’ 내레이션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추는 것. “한국 배우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판도르마얼이 다시 유지태를 고집한 덴 이유가 있다. 그는 “부드럽고 다정한 유지태의 목소리는 풍자적인 작품 내용과 반전을 이룬다. ‘당신은 곧 죽을 거야. 그런데 다 별거 아니야’라는 뉘앙스를 전달하기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10년 만의 내한공연을 앞두고 “한국은 언제나 흥미로운 나라”라면서 설렘을 드러냈다. “한국 문화는 빠르게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어요. 한국 관객이라면 작품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언젠가는 영화에서도 한국의 마법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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