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재해석한 프로메테우스… 로맨스의 원형 오르페우스 신화
고대∼현대 예술작품에 영감… 신화 속 인물 8명 집중 분석
인간 근원적 욕망 투영된 모습… 인물 해석 시대별 변천사 담아
◇세상은 신화로 만들어졌다/리처드 벅스턴 지음·배다인 옮김/304쪽·1만9500원·더퀘스트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부제목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파하려다가 제우스에게 들켜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소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도 과학으로 생명체를 만들려 하다가 괴물을 낳게 되고,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SF 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소설을 낳은 것처럼, 현 시대의 예술 작품들 다수가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신간은 영국의 저명한 신화학자인 저자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8명을 골라 집중적으로 다룬다. 프로메테우스, 메데이아,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마조네스, 오이디푸스, 파리스의 심판,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모두 독특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 속 인물들이다. 저자는 캐릭터 집중 분석을 통해 고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까지 신화가 사회·문화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짚어본다.
“비즈니스 프로젝트와 광고, 마케팅에 있어서 그리스 신화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보물상자”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 실제로 책에는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신화 속 인물들의 흥미로운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추리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단편집 ‘헤라클레스의 모험’에서는 전설적 탐정 에르퀼 푸아로의 사건에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 차용된다. 마초적 전사의 모습을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의 흔적은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리라 연주자 오르페우스가 연인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옥에 내려갔다가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는 매혹적이면서도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로맨스의 원형이다. 특유의 음악성 때문에 산문 형식으로 기록된 다른 신화와 달리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시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제였다. 작사가 시모니데스를 비롯해 많은 고대 그리스 시인들이 연인 에우리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달콤한 시로 읊었다. 그런데 2∼3세기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오르페우스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등, 중세로 갈수록 보다 다양한 캐릭터 해석이 등장한다.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판단해야 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이야기는 후대에 보다 심오하게 해석된다. 북아프리카 태생으로 추정되는 작가 파비우스 플란시아데스 풀젠티우스는 5세기 후반 저술한 ‘신화론’에서 세 여신의 욕망을 평가했다. 아테나는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명상하는 우아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헤라는 탐욕스럽게 소유물에 집착하는 삶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욕망으로 가득 찬 쾌락적 삶은 이 중 최하위다. 이 평가에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신화에 투영되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신간은 고대인들의 삶에 뿌리내린 신화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여전히 유효한지 알려준다. 풍부한 지식이 녹아 있지만, 현대인들의 관심사와 엮어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점이 매력적. 또 현대뿐 아니라 고대, 중세 등 신화 속 인물들의 변천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점도 흥미롭다. 가족, 다름의 개념, 기원, 정치 등 인간의 근원적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풍성히 다뤄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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