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막심한 죽동궁(竹洞宮)의 말로(末路) 돈 때가 묻은 가가지 세간 한길가에서 싸구려 신세로 ◇ 한창 세도가 당당하던 숙종대왕의 장인 려양부원군 민유중 공의 가통도 분명치 못한 상속자 민정식 대에 이르러 난마같은 집안은 나날이 쇠하여 들어가다가 수십만의 재산을 가지고도 맘대로 하지를 못하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다가 필경에는 몸을 피하야 상해(上海)로 달아나서 그나마 죽동궁(竹東宮)이라던 대문조차 영구하다 더 버리게 된 지가 이래 몇 달이 되었던 바 재작일부터 그 집안 창고에 깊이 쌓여 있던 역대 손손히 내려오던 구하기 드문 가장 집물이며 주인이 친히 쓰던 탁자와 상이며 안주인이 입던 명주 비단 옷가지를 산산히 끄어내여 죽동궁 앞 넒은 마당에서 『십원이오 십원 십원 십원 오십전이오 자』소리를 치며 경매를 하게 되엿는데 부러진 상다리 깨어진 솥두껑, 동 녹 쓴 침상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구의 감에 느끼게 하였으며 이끼 돋은 기와장에 『동민회』(同民會) 라고 쓴 흰 간판이 갈린 죽동궁은 옛날 듣고 지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비창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로써 말썽 많던 죽동궁은 젓가락하나 남지 않고 망해 버린다더라. |
〈죽동궁 민정식 씨의 몰락과 세간의 하소연 -몰락한 죽동궁의 주인〉 “열흘 붉은 꽃 없고 십 년 세도 없다”는 속담이 죽동궁 민정식 씨의 집에 딱 들어맞는다. 그는 아내 이봉완 씨에게 휘둘리고 처가와 삼촌들, 그리고 채권자들에 시달리다 결국 죽동궁을 떠나 상하이로 몸을 피했다. 현재 그는 낯선 땅에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죽동궁처럼 웅장했던 집은 이미 민영휘 씨의 소유로 넘어갔고, 남은 재산 역시 팔려나가고 있다. 집 안의 세간살이들마저 일본인 변호사에게 맡겨져 길거리 고물상에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세간들의 하소연 민정식 씨 집안에서 대대로 사용되던 세간들은 이제 주인을 잃고 낯선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물건들은 자신들이 겪는 처지를 이렇게 한탄한다. ◇배가 고픈 두 주전자 이야기 과거 민정식 집안의 식량을 책임졌던 두 주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집 대청 구석에서 수백 명의 식구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 덕분에 한때 배고픔을 몰랐지만, 요즘은 우리 안이 텅 비어 배가 고픕니다. 결국 경매장으로 끌려가서 깨지고 망가져 이제 쓸모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꽃 같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접시 “나는 선대감의 특별 주문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최고급 접시였습니다. 산해진미를 담으며 연회와 식탁을 빛내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깨지고 금이 가 병신이 되었습니다. 조선까지 와서 이렇게 비참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비단옷이 담겼던 장농의 한탄 “내 몸엔 대방마님이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들이 차곡차곡 쌓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옷들은 하나둘 팔려 나갔고, 끝내 쥐들이 내 몸을 갉아먹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금은 경매장 구석에서 나뒹굴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옛 영광을 잃은 침대 “내 몸 위에는 한때 주인 부부가 편안히 잠들었고, 마마님들도 자주 쉬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금이 벗겨지고 똥칠까지 당해 비참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정식 씨의 몰락과 함께 세간살이들도 주인을 잃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영광을 누리던 물건들이 몰락한 집안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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