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오후 1시경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 아담한 식당 앞에 검은 밴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경호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간 이는 소설가 한강(54). 그의 대표작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펴낸 스웨덴 출판사 나튀르 오크 쿨튀르가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한강과 각국 편집자들을 초대한 비공개 오찬 자리였다.
복수 참석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오후 4시에 개점하는 식당을 통째로 빌려 다른 외부 손님 없이 약 2시간 동안 식사가 진행됐다. 이날 오찬에는 스웨덴을 비롯해 한국,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이 모여 한강과 자리를 함께했다. 국내에선 한강의 책을 주로 펴낸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비 편집자들이 참석했다. 한강 작품의 해외 출간을 맡은 에이전시 RCW 관계자도 참가했다.
마치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반영한 듯 이날 오찬 메뉴는 채식으로 꾸려졌다. 콩이 들어간 야채 수프와 가지를 두부처럼 튀긴 비건용 스테이크, 초콜릿 무스가 코스로 나왔다. ‘채식주의자’는 현재 스웨덴 대형 서점에서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강은 평소 채식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 10월 수상자 선정 직후 노벨재단 관계자에게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날은 와인을 가볍게 한 잔 정도 마셨다고 한다.
중앙 헤드 테이블에 앉은 한강은 외국인 편집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들과 영어로 대화했다. 오찬에 참석한 국내 편집자는 “한강이 하루에 공식 일정만 2, 3개씩 소화하고 있지만 별로 피곤한 기색이 보이진 않았다”며 “외국 편집자들에게 둘러싸여 국내 편집자들과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한강 작가가 중간에 ‘얘기도 잘 못해서 어떡해요’라는 말을 건넸다”고 했다.
한강은 오찬을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콘서트’에 참석했다. 노벨상 콘서트는 매해 노벨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노벨 주간 공식 프로그램. 이날 한강은 2층의 스웨덴 왕실 좌석의 왼쪽에 앉았다. 긴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는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공연을 기다렸다.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입장하자 객석에 앉은 이들이 모두 일어섰다. 한강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국왕 부부를 맞았다.
이날 공연은 체코 지휘자 페트르 포펠카 지휘로 왕립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 등을 연주했다. 이어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아리아를 열창했다. 콘서트가 열린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10일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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