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직항이 없어 런던에서 환승해야 했고, 짐이 옮겨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렸던 고국에서 17시간이 걸려 도착한 이국의 공항은 스산했다. 노벨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의상(연미복)이 꼭 필요해서 호텔로 짐이 와야 한다고 어렵게 설명해야 했고, 짐이 도착한 것은 37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 도시는 오후 3시가 되면 어두워지고, 무거운 구름은 해상 왕국 시대의 창연한 건축물 위에 머물고 있었다. 운하 옆에 위치한 시청사의 거대한 벽면에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고 거기 한강 작가의 얼굴이 떠오를 때, 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기자회견과 강연이 열린 한림원은 구시가지 지역으로 운하의 건너편에 있었다. 한림원 내부 공간은 예전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바랜 금빛과 우아한 민트색의 장식이 찬란했다. 그곳에서 강연을 위해 연단에 오른 한강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익숙하게 들어온 나지막한 목소리 톤이 이 공간에 울려 퍼질 때, 이 놀라운 장면은 한국문학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바로 그 순간의 도래를 의미했다. 미리 나누어준 원고 문장들의 문어체 어미를 모두 경어체로 바꾸어 읽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한국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잠시 후 깨달았다. 한결같은 톤의 낮은 목소리는 오히려 분위기를 집중시켰다. ‘빛과 실’이라는 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창작의 계기들을 둘러싼 내밀한 시간들을 말하는 강연은, 결국 인간의 참혹과 언어와 사랑을 둘러싼 보편적인 질문에 가닿았다.
다음 날인 8일 한강의 책을 펴낸 세계 각국의 편집자 모임이 작은 식당을 가득 채웠다. 브라질에서 온 쾌활한 편집자가 작가의 책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동시대 세계인의 한국문학과 문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했다. 작가가 참석하는 행사에는 어디든 작가와 소통하려는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쌌다. 작가는 거의 매일 타이트한 일정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건 오랜 고립 속에 있었던 한국문학이 한 사람의 작가를 통해 치러내야만 하는 뒤늦은 통과의례와 같았다. 이국에서의 조금은 과장된 이 의례들이 다 끝나고 나면, 한국문학은 이제 다른 시간대에 안착할 수 있을까? 작가에게도 던져진 질문이지만, 그들은 계엄령 이후의 한국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문화적 가치의 정점에서 ‘21세기의 계엄령’이라는 퇴행적 장면을 동시에 드러낸 나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 갑자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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