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展
‘라이트형제’ 일반에 첫 공개… 개인 소장작품 등 160여점 선보여
‘108번뇌’ TV 27대 수리-교체 전시
사진-퍼포먼스 기록도 눈길
백남준은 열다섯 살에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아널드 쇤베르크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듣고, 곧장 작곡가 쇤베르크에게 강한 호기심을 갖는다. 그러나 때는 1947년, 한국에서 그의 음악을 듣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2∼3년을 찾아 헤맨 끝에 해적판 쇤베르크 음반을 구한 백남준은 “이집트 무덤에서 보석을 찾은 것처럼 흥분됐던 마음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백남준은 ‘아방가르드’ 쇤베르크를 공부하러 일본을 거쳐 독일에 갔다가 유럽의 전위 예술 그룹 ‘플럭서스’를 만나고, 미국 뉴욕에서도 활약하며 세계적 미술가로 남았다. 지난달 30일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전은 그런 그의 작품과 기록 160여 점을 선보인다.
● 국내 미술관 최대 규모 회고전
그간 국내 백남준의 작품은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도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141점. 작품 88점, 자료 38점, 영상 15점)이 대부분이지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전시장, 에코랜드 등 국내 다양한 기관에서 작품을 가져왔다. 백남준 사후에 국내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중 최대 규모다.
전시에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있다. 1995년 만든 ‘라이트형제’로 비행기를 만든 두 형제를 텔레비전 모니터로 구성했다. 이 작품은 국내에 2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개인 소장가가 자택에 전시해 두었던 것으로, 미술관의 설득 끝에 출품됐다.
백남준의 작품을 여러 기관이 갖고 있지만, 기술적 문제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김가현 학예연구사는 “정상 작동 여부가 전시 작품 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108번뇌’는 TV 27대를 교체하고 수리해 전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남준 조수’ 이정성 선생님, 을지로 전파사인 정우TV 사장님 등 ‘브라운관 기술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시였다”고 웃었다.
● “한국인이기에 전위를 추구했다”
그 결과 전시장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어 백남준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다. 그런데 TV로 형태를 만들고 모니터에 영상을 삽입한 백남준의 대표작만큼 그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기록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백남준이 독일에서 펼쳤던 다양한 퍼포먼스 기록이 공개됐다. 그가 1962년 독일의 실험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해 머리카락에 먹을 묻히고 선을 긋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실험 음악 거장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의 모습이 영상과 사진으로 남아 있다. ‘20세기 다빈치’로 불리는 독일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와 퍼포먼스를 하고 만든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백남준이 40대가 되어 쇤베르크를 변형한 음악을 담은 LP판도 볼 수 있다. 이 음반 표지에서 ‘쇤베르크’라는 이름 하나에 끌렸던 10대 때 자신을 회고하며, 백남준은 자신이 한국인이었기에 아방가르드를 추구할 수 있었다고 쓴다.
“나는 왜 ‘극단적 아방가르드’라는 단어에 끌렸을까? 내 몽골 DNA 때문일 것이다. 말을 타고 시베리아, 페루, 한반도, 네팔을 누볐던 우랄 알타이족. 그들은 중국 농경 사회처럼 중심부에 머물지 않고 먼 곳에 지평선이 보이면 그 너머를 더 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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